"북녘 고향땅 다시 밟겠다"…연탄으로 데우는 '그리움의 길이'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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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名의 기원 (17) 삼천리“우리 제품으로 삼천리 반도 전체를 석권하겠다.”
함주 출신 故 이장균·유성연 회장
1955년 을지로서 연탄공장 창업
3代째 이어지는 '끈끈한' 동업정신
도시가스로 영역 넓혀 1위 우뚝
이젠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도약
도시가스업체 삼천리의 전신인 삼천리연탄기업사를 공동으로 세운 고(故) 이장균·유성연 회장이 창업 당시 의기투합하면서 했던 결의다. 두 창업주는 모두 함경남도 함주 출신이다. 이 회장은 1947년 함흥으로 건너가 소련군을 상대로 식료품 장사를 하면서 역시 장사를 하던 유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6·25전쟁으로 두 창업주 모두 피란을 내려온 뒤 1955년 함께 서울 을지로에 연탄공장(삼천리연탄기업사)을 세웠다. 전쟁 당시 이 회장이 경북 포항에서 먼저 무연탄 유통업을 한 게 계기가 됐다. 피란지였던 부산 등에서 연탄 사용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이 회장은 “장차 연탄이 가정 연료로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고 판단했다.회사명에 ‘삼천리’를 넣은 데는 회사 제품으로 성공해 고향(북한) 땅을 다시 밟겠다는 두 실향민 창업자의 기대와 의지가 깔려 있었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삼천리(三千里)는 한반도 남북 방향의 길이에 해당돼 우리나라 영역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연탄회사 시절 유 회장이 연탄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사장을 맡고, 이 회장은 원탄 구매와 자금을 담당하는 부사장을 맡아 역할 분담을 했다. 1970년 당시 삼천리보다 훨씬 규모가 큰 탄광회사 삼척탄좌(현 ST인터내셔널)를 사들였다. 안정적인 원탄 확보로 고속 성장하면서 삼천리는 1978년 연탄 판매량 190만t을 기록, 국내 연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 됐다. 이 회장은 1983년 경인도시가스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도시가스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 사명인 (주)삼천리도 이때 완성됐다. 사양길에 접어든 연탄을 대신해 액화천연가스(LNG) 등 새 에너지원이 부상할 것이란 이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선대 회장의 이 같은 결정은 1993년 2세인 이만득 명예회장(사진)이 회장으로 취임한 뒤 꽃을 피웠다. 이 명예회장은 삼천리가 도시가스 사업 영역을 넘어 ‘종합에너지 전문기업’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 삼천리ES(가스 냉난방기 설치), 2002년 삼천리ENG(도시가스 배관설비)를 각각 설립해 에너지 기기·엔지니어링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2년에는 민간 발전사인 에스파워를 설립해 발전 시장에도 진출했다. 도시가스 사업도 급성장했다. 현재 경기 수원과 안양·광명·부천 등 13개 시, 인천 남구·중구·동구 등 5개 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전국 최대 도시가스업체가 됐다.올해로 65주년을 맞은 삼천리는 동업 원칙을 2대에서 3대까지 이어오며 양가 지분을 50 대 50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창업주는 세상을 떠날 때 2세에게 어떤 비율로 투자하든 이익을 똑같이 나누고, 한쪽이 반대하는 사업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등 다섯 가지 항목의 동업서약서를 남겼고, 후대가 이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 명예회장 집안과 유상덕 ST인터내셔널 회장 집안이 삼천리 지분을 19.5%씩 보유하고 있다. 2010년에는 삼탄(현 ST인터내셔널)이 계열사 지분 조정을 위해 보유하던 삼천리 주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두 가문이 주식 수를 똑같이 맞추기 위해 단 1주를 장외에 매물로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