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의 '강경화 협박'…반박도 못하는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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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장관께서는 북한을 포함한 국제적 방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것으로 저희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외교수장 공개 모욕했는데
장관 발언내용 해명만 거듭
송영찬 정치부 기자
세 번의 거듭된 질문에도 외교부 대변인의 답변은 똑같았다. 지난 10일 외교부 브리핑에서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강경화 장관 비난 담화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발언 취지가 아니라 김여정의 담화로 국민의 자존심이 상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도 답은 마찬가지였다.외교부의 ‘반복적인’ 말마따나 김여정이 맹비난한 강 장관의 발언은 북한과의 코로나19 관련 보건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강 장관은 지난 5일 바레인 순방 중 국제안보포럼 마나마 대화에서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환자가 0명이라고 말하는데 매우 믿기 어렵다”며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해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중보건을 위한 지역 협력에 북한을 초대했다”고도 덧붙였다. 이 말은 준비된 연설이 아니라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 나왔다.
김여정은 전체 맥락이 아닌 일부에만 초점을 맞춰 ‘앞뒤 계산도 없는 망언’이라며 강 장관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남북한 관계 악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한 발언으로 해석했다. 이어 나온 말은 더 경악스러웠다.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해 우리 정부를 향해 강 장관의 거취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외교 수장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 대한 외교부의 입장은 북한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해명에 가까웠다. 물론 외교부는 통상 공식 석상에서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평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외교부 당국자들의 입을 통해 ‘비공식적’으로나마 입장을 전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지난해 11월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강경화 장관은 장식품”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외교부 관계자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굉장히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즉각 비판했다.
지난달 강 장관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방일과 관련해 “외교부나 안보 부처 사이에 충분한 협의가 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외교부는 이례적으로 보도 해명 자료를 내고 “기사가 보도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국익을 저해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김여정의 단정적이고 추측성 망언에 대한 외교부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비판은 없고 어설픈 해명뿐이었다. 이 같은 우리 외교 당국자의 말이 김여정의 도를 넘은 대남 비방보다 국민의 자존심을 더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