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곳] 마틴 에덴과 나폴리

사랑은 계급을 이길까?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에 꼽히는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항구 도시지만, 극심한 빈부격차, 높은 범죄율로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경제력 차이에 따른 이탈리아 남북 갈등의 중심지가 됐고, 근현대를 관통하며 사회주의 운동이 번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낭만과 위험이 공존하는 격동의 도시라면, 늘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 어떤 식으로든 '사건'은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로부터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이탈리아 영화의 새 거장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은 110년 전 발표된 잭 런던의 소설 '마틴 에덴'을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무대만 미국 오클랜드에서 나폴리로 옮겨왔다.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이 상류층 여자 엘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탈리아라면 나폴리가 제격이다.

계급이 다른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결말만 가지고 손쉽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이뤄진다'와 '이뤄지지 않는다'로.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는 계급성이 공고한 것이냐, 깨뜨릴 수 있는 것이냐의 철학적 관점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여기서 계급성은 많은 부분 미적 취향으로 나타난다.

정치·경제적으로 분할된 계급과 이데올로기는 예술 행위의 조건들을 결정하고 이는 개개인의 예술적 취향이 되며, 이런 취향의 분할은 다시 계급 분할을 합리화하게 된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짓기'를 통해 이러한 문화자본의 정체를 실증했다.
◇ 계급과 사랑
영화 '마틴 에덴'에서 마틴은 부두에서 부랑자에게 구타를 당하던 청년을 구해준다.

상류층인 청년의 집에 초대받은 마틴은 그의 누나인 엘레나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우아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마틴의 프랑스어 발음을 교정해주고, 보들레르의 시집을 선물하는 엘레나에게 그는 마음을 빼앗긴다.

마틴은 오로지 엘레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엘레나처럼 되겠다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시를 쓴다.

그러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틴은 이탈리아 민중의 비참한 현실과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그가 쓰는 시에도 어두운 현실이 반영된다.

자연히 엘리트 취향의 안정적인 '교양'을 원하는 엘레나와는 멀어진다.
우연히 알게 된 사회주의자이자 시인인 루스와 가까워진 마틴은 노동자 집회에도 참석하는 등 사회적 모순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그러나 엘레나와의 사랑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한 마틴은 정작 사회주의자의 길도 가지 못한다.

그에겐 '공동체'보다 '개인'이 중요했다.

시인이자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둔 마틴에게 엘레나가 찾아왔지만, 마틴은 더이상 엘레나와 함께 할 수가 없다.

그에겐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아닌, 개인의 '자유'가 가장 소중했다.

계급 분할, 이데올로기, 권력이 만들어내고 규정하는 구조화된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순수취향
계급에서 자유로운 순수취향이 가능할까.

부르디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미적 경험에 대한 보편적이고 평등주의적 관점을 긍정했다.

랑시에르는 권력이 대중들에게 부여하는 후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구조화된 이런 취향을 '감각의 분할'이라고 보고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떠올리게 한다.

음성학자가 거친 말투로 꽃을 파는 여자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상류층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완벽한 억양을 가진 세련된 사람으로 변모시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 꽃 파는 여자는 감각의 분할을 극복한 것일까.

감각 분할을 극복해 미적 취향이 달라졌다면 계급성을 탈피할 수 있는 걸까.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다.

마르첼로 감독은 영화 곳곳에 다양한 아카이브 영상을 삽입해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재된 듯한 효과를 냈는데, 이 놀라운 콜라주 영상으로 항구도시 나폴리는 그 낭만과 위험의 역사가 새겨진 천의 얼굴을 새롭게 영화에 드러내고 있다.

'마틴 에덴'에 대해 '지난 10년의 최고 영화 중 하나'라고 했던 봉준호 감독의 찬사는 계급 문제에 대한 탁월한 성찰과 함께 이같은 미학적 성취를 향해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