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영화제 본상 휩쓸었는데…김기덕 별세에 조용한 영화계

공식 추모입장 없이 말 아껴…영화감독조합 "소속 아니다"
'미투 사태' 이후 국내 영화계와 불편한 관계…러시아 주변에서 주로 활동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하나로 특히 해외에서 주목받아온 김기덕 감독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이 전해졌지만, 국내 영화계에서는 아직 공식 추모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네치아·베를린·칸 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받은 국내 유일한 감독인데도, 영화계 주요 단체와 관계사들로부터 애도 성명이나 논평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개인적인 추모 글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12일 "김 감독은 조합 소속이 아니다"라며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계에서 부고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고 즉각 반응이 나오는 편인데 지금은 전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감독은 전날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현재 정부 등에서 유족과 장례 계획을 논의 중이다.
이런 분위기는 김 감독이 과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이후 국내 영화계와 불편한 관계였던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감독조합을 비롯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프로듀서조합, 영화산업노동조합, 영화단체연대회의 등 영화계 주요 단체들은 지난해 김 감독이 자신의 성폭행 혐의를 폭로한 여배우와 이를 보도한 언론을 고소했을 때 "2차 가해를 멈추고 자성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들 영화 단체에 따르면 여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김 감독의 폭언, 추행, 성폭행 혐의 등은 지난 2017년 '미투' 캠페인이 확산할 당시 공개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기 훨씬 이전부터 업계에서 만연하게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김 감독이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도 영화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우호적인 분위기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이 '미투' 폭로 이후 키르기스스탄에서 영화를 촬영하고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에 위촉되는 등 러시아와 주변국에서 활동해온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주변국에서는 여전히 김 감독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자신을 찬미하는 곳으로 간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17년 영화 촬영 중 여배우 A씨의 뺨을 때리고 폭언하며 대본에 없던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는 내용으로 고소를 당했고 결국 벌금형을 받았다.

2018년에는 MBC PD수첩이 김 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성범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은 A씨와 스태프들의 증언을 방송했다.

김 감독은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하자 A씨와 MBC를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무혐의 판결 났다. 이후 그는 다시 10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고 지난달 항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