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AI 중매

나에게 딱 맞는 연인은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넷플릭스에 소개된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스템의 연인’에서는 최적의 짝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찾아준다. AI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마련한 소개팅의 성공 확률은 99.8%. 짝 찾기에 성공한 커플들은 “그간 서로 알아서 상대를 찾아야 했을 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말한다.

드라마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민간 기업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미혼 남녀의 ‘AI 중매’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8년 AI 중매 시스템을 도입한 사이타마현에서 지난해 맺어진 38쌍 중 21쌍이 결혼에 성공했다.일본에서는 결혼 상대를 찾는 일을 험난한 구직활동(就活·슈카쓰)에 빗대 ‘곤카쓰(婚活)’라고 부른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오프라인에서 이성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현상 때문이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60만 건, 출생아 수는 86만여 명으로 사상 최저치였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20억엔(약 210억원)을 지자체의 AI 중매 사업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시스템의 개인 이용료는 2만엔(약 21만원) 이하로, 민간 서비스의 10분의 1 정도다. AI 중매에 나선 지자체는 10여 곳이다.

우리나라의 결혼 기피와 저출산 문제는 일본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23만9200건으로 역대 최저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지난해 0.92명으로 낮아졌다.한국 젊은이들은 일본의 ‘은둔족’보다는 적극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남의 공간이 줄어들자 데이팅 앱을 활용한 온라인 미팅으로 짝을 찾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 앱 ‘스타이피플’이나 글로벌 앱 ‘틴더’의 이용률이 급증했다. 화상통화 형식의 온라인 실시간 미팅 사이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AI와 앱을 통한 맞춤 중매는 ‘연애 매칭’뿐만 아니라 ‘일자리 매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앞으론 AI 없이 일자리나 배우자를 찾는 게 어려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AI는 어디까지나 ‘인공’일 뿐, 알고리즘의 설계자는 인간이다. 연인을 찾는 것은 물론 사랑의 기쁨과 오묘한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해하는 건 역시 사람이다. ‘블랙미러’의 주인공 남녀가 ‘유효기간’이라는 시스템의 벽을 넘어 과감하게 탈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