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의 힘?...신한銀, 법적 분쟁 끝난 '키코' 손실 결국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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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 기업에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고통을 겪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감안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전날 보상 계획을 발표한 씨티은행에 이어 신한은행도 금감원의 압박에 결국 보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선 법적 분쟁이 마무리된 사안이 금감원 의사로 뒤집히는 ‘나쁜 선례’가 남게 됐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한은행의 이번 결정이 앞서 금감원 배상안에 불수용 의사를 나타냈던 다른은행들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신한은행 자체 보상안 마련
15일 신한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키코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보상안을 의결했다. 보상금액은 법률 검토와 기업별 상황을 감안해 결정하기로 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율이 내릴 것에 대비해 환헤지(위험회피)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피해를 봤다.
작년 12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한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은행 6곳에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피해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나머지 피해기업에 147곳에 대해선 은행에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하라고 했다. 권고안을 받은 은행 6곳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5곳(신한·산업·하나·대구·씨티)은 ‘불수용’ 의사를 나타냈다. 불완전판매와 사기 혐의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았고,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행사 3년, 행위 10년 기준)가 지나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중에서도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은 지난 6월 배상결정에 대해 ‘불수용 의사’를 가장 먼저 나타냈다.
신한은행이 배상안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 자율조정 권고를 받은 기업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키코 피해 기업에 사실관계 확인 작업과 대응 방안을 고심해왔고, 이사회에서도 보상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책은행도 금감원에 ‘반기’
은행들의 기류가 변화는 금감원의 금융사에 대한 권고·제재 관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감원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수락하지 않아도 책임이 없지만, 거스르면 후폭풍이 적지 않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배상안을 거부할 당시부터 금융권에선 ‘수용 거부를 그대로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대형 금융사에 대한 감독당국의 ‘종합감사’가 부활하고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각종 제재심에 불려들여가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에 은행 협의체에서 신한은행과 조정안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신한은행 이사회가 보상안에 대해선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5개 은행이 ‘불수용’ 의사를 나타내 당시 금감원이 체면을 크게 구겼다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키코 문제를 분쟁 조정 아젠다로 올려놓은 것이 제일 잘한 일’, ‘키코 배상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건 금융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수차례 밝혀왔다. 금융그룹 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키코 얘기를 도마위에 꺼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코 사태와 관련해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만이 크게 반발하는 모양새로 남게 됐다. 6월 만들어진 자율조정 협의체가 지지부진하게 운영됐던 가운데 나머지 은행들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 “(금감원의 배상권고 기업이) 건전한 헤지(위험 회피)가 아닌 투기를 한 흔적이 발견됐고, 배상은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해 금감원 결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보다는 금감원장의 소신 때문에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무너진 사례”라며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배상 대신 보상을 선택했다는 게 이번 결정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김대훈/박종서 기자 daepun@hankyung.com
15일 신한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키코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보상안을 의결했다. 보상금액은 법률 검토와 기업별 상황을 감안해 결정하기로 했다.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 아니라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는 의미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상품이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율이 내릴 것에 대비해 환헤지(위험회피)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피해를 봤다.
작년 12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한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은행 6곳에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피해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나머지 피해기업에 147곳에 대해선 은행에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하라고 했다. 권고안을 받은 은행 6곳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5곳(신한·산업·하나·대구·씨티)은 ‘불수용’ 의사를 나타냈다. 불완전판매와 사기 혐의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았고,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행사 3년, 행위 10년 기준)가 지나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중에서도 신한은행과 씨티은행은 지난 6월 배상결정에 대해 ‘불수용 의사’를 가장 먼저 나타냈다.
신한은행이 배상안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 자율조정 권고를 받은 기업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키코 피해 기업에 사실관계 확인 작업과 대응 방안을 고심해왔고, 이사회에서도 보상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책은행도 금감원에 ‘반기’
은행들의 기류가 변화는 금감원의 금융사에 대한 권고·제재 관행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감원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어 수락하지 않아도 책임이 없지만, 거스르면 후폭풍이 적지 않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배상안을 거부할 당시부터 금융권에선 ‘수용 거부를 그대로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대형 금융사에 대한 감독당국의 ‘종합감사’가 부활하고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각종 제재심에 불려들여가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에 은행 협의체에서 신한은행과 조정안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며 “신한은행 이사회가 보상안에 대해선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5개 은행이 ‘불수용’ 의사를 나타내 당시 금감원이 체면을 크게 구겼다는 해석도 나왔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키코 문제를 분쟁 조정 아젠다로 올려놓은 것이 제일 잘한 일’, ‘키코 배상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건 금융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수차례 밝혀왔다. 금융그룹 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키코 얘기를 도마위에 꺼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코 사태와 관련해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만이 크게 반발하는 모양새로 남게 됐다. 6월 만들어진 자율조정 협의체가 지지부진하게 운영됐던 가운데 나머지 은행들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장에서 “(금감원의 배상권고 기업이) 건전한 헤지(위험 회피)가 아닌 투기를 한 흔적이 발견됐고, 배상은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해 금감원 결정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보다는 금감원장의 소신 때문에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무너진 사례”라며 “은행의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배상 대신 보상을 선택했다는 게 이번 결정의 모순”이라고 말했다.
김대훈/박종서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