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 임대료 깎는 건 사유재산권 침해…위헌 소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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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임대료 공정' 발언 뒤사상 초유의 ‘상가 임대료 강제 인하’ 정책이 현실화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정부 방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금지된 자영업자가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지는 게 공정한 일인가”라고 한마디 하자 당정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영업금지·제한 업종 소상공인에게 임대료를 청구할 수 없게 한 ‘임대료 멈춤법’(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14일 내놓았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도 15일부터 대통령의 뜻을 이행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랴부랴 나섰다.
與의원 '임대료 멈춤법' 발의
기재부, 대책 마련 본격 착수
전문가 "경제 주체의 계약 부정은
헌법이 보장한 개인 자유권 침해"
하지만 이런 시도는 자본주의의 근간인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사적 계약’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개인의 사유재산을 과도하게 제약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사적 계약까지 개입하겠다는 정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소상공인이 임대료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 9월 소상공인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경영여건 악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 가장 큰 것으로 임대료 부담(69.9%)이 1위를 차지했다.정부는 지난 4월부터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대인이 자발적으로 소상공인의 임대료를 깎아주면 인하 임대료의 50%를 소득·법인세에서 감면해주는 제도다. 10월 말 기준 4만3000곳 이상의 점포가 임대료 인하에 참여했다. 임대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상생의 문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도 받았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임대료 공정론’을 꺼내들었다. 어려운 자영업자로부터 임대료를 받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인식이다. 정부는 즉각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임대인을 포함한 사회 전반이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임대료 부담을 함께 나눠질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임대료 책정은 임차인과 임대인이 자율적으로 체결하는 사적 영역이다. 이런 사적 영역까지 정부가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임대료 강제 인하는 위헌적 발상”
전문가들은 발상 자체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일제히 지적했다. 헌법학자인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대료는 경제 주체 간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며 “임대료 강제 인하는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권과 재산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는 헌법 119조,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 있지만 지금 추진하는 정책은 119조의 범위마저 훨씬 넘어선다”고 했다.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도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국민”이라며 “임대인 상당수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건 공정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정부 내부에서조차 비판적인 시각이 나온다. 이성만 민주당 의원은 9월 ‘집합금지 조치를 받은 임차인으로부터 임대료의 50% 이상을 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실천한 것이다. 법무부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임대인의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 행정조치로 발생한 손해를 임대인이 전부 부담하는 것에 대한 정당화 근거가 부족하다”고 적었다.
당정의 ‘상가 임대료 강제 인하’ 구상은 주택 임대료 규제보다 더 나간 것이다. 정부는 7월 말부터 임차인이 “집에 더 살고 싶다”고 요구하면 거부할 수 없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시행했다. 계약 갱신 때 임대료 증액을 5%로 제한한 ‘전월세 상한제’도 시행 중이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임대료 증액 제한과 임차인 갱신청구권 보장에 이어 이제 임대료를 아예 받지 말라니 기본권 침해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공실이 늘고 있어 어려운 임대인도 많은데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서민준/강진규/구은서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