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구의역 김군'에 "걔만 신경썼으면 아무일 없었다"…위험한 노동관

SH 사장 시절 "걔(김군)만 조금 신경 썼으면 사고 안 나"
SH 채용 '마케팅전문가' 비정규직에겐 사무직군 제안해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구의역 김군)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거잖아요."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고에 대해 이같이 언급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그러면서 "마치 시장(당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며 구의역 사고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보단 이로 인해 비판받는 박원순 전 시장을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도 했다.

또 변창흠 후보자가 SH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마케팅 전문가'로 채용된 이들을 사무직군인 '사무지원원'으로 전환시키거나 계약 해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창흠 후보자와 SH는 이로 인해 송사에 휘말렸으나 결국 패소했다.비정규직의 노동안전 인식과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한 변창흠 후보자의 '노동관'이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당시 회의록 보니…변창흠, 거듭 "아무것도 아닌데"

2016년 6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사망한 근로자 김군을 추모하는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SH로부터 제출받은 2016년 6월30일 '건설안전사업본부 부장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SH 사장이었던 변창흠 후보자는 구의역 김군 사고를 두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규정했다.회의록을 보면 변창흠 후보자는 구의역 김군 사고를 두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라면서 "이게 시정 전체를 다 흔든 것", "마치 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 캠프에 참여한 적 있는 '친 박원순 인사'로 분류됐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그는 거듭 "서울시 산하 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이라면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기업 사장으로서 노동안전의 구조적 문제를 짚기보단 구의역 김군 개인의 실수로 돌린 셈이다.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변창흠 후보자는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히지만, 정작 이러한 변창흠 후보자의 구의역 김군 관련 시각은 문재인 정부와 궤를 달리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구의역 김군' 사고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변창흠 후보자가 해당 언급을 하기 전인 2016년 6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구의역 김군 사고를 두고 '지상의 세월호'라 표현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인 2017년 6월12일에는 국회 추가경정(추경)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서 "구의역 사고 같은 비극은 다시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경닷컴>이 당시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변창흠 후보자 측은 "말이 조금 빗나가고 표현이 잘못됐던 것 같다"며 "안전관리를 최우선에 두고 경각심을 갖자는 발언이었다. 이런 취지였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해명했다.

SH 사장 시절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거부

하지만 구의역 김군 사고에 대한 발언뿐 아니라 변창흠 후보자는 SH 사장 시절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사실상 거부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내건 문재인 정부 철학과 거리가 있는 사례다.변창흠 후보자와 SH는 2015~2017년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와 관련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SH는 변창흠 후보자 사장 취임 전이었던 2013년 3월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했다. 단기계약직으로 마케팅 전문가를 뽑으면서 "실적이 우수한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조건을 명시한 공고를 냈다.

당시 SH는 채용 절차를 거쳐 총 7명의 마케팅 전문가를 비정규직으로 뽑았다. 일부는 공기업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정규직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채용 절차에 응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정규직들이 1년 계약 연장을 하며 근무를 이어가는 동안 SH 측도 무기계약직 전환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마케팅실장은 2015년 2월 기획경영본부장에게 비정규직들 가운데 희망자 전원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변창흠 후보자는 이러한 실무진 요구에도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기존 업무를 이어가는 무기계약직 전환이 아닌 '사무지원원'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러자 7명 가운데 2명은 이 같은 전환에 거부, 소송을 냈다. 이들은 각각 라급(정규직 5급 상당), 다급(정규직 4급 상당)으로 채용됐으나 사무지원원으로 전환되면 9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마케팅 전문가에게 사무지원원으로 전환 제안

대법원은 2017년 2월 소송을 제기했던 비정규직들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선 SH가, 항소심에서는 비정규직이 이겼다. SH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됐다. 당시 2심 재판부는 SH가 비정규직에게 지속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신뢰를 부여했다고 판단했다.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이 지난 8월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소송을 낸 2명은 SH 내에서도 우수 사원으로 손꼽혔다. 채용의 주된 목적이었던 부채 감축에 기여했고 각각 2차례와 4차례 '판매왕'으로 선정됐다. 결과적으로 실적이 우수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약속을 변창흠 후보자 취임 후 뒤집은 셈이 됐다.

김은혜 의원은 "정규직과 일은 동등하게 하면서도 처우는 부당한 비정규직 문제는 공기업·부처의 수장으로서 자질과 도덕성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해당 비정규직 청년들은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채용공고 때와 다른 고용불안으로 내내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약자인 비정규직 청년들에 대해 후보자가 공정과 정의를 저버린 사례"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SH사장 재직 당시 변창흠 후보자의 '구의역 김군' 관련 발언.

변창흠 후보자 : 최근 구의역 사고를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고, 이게 시정 전체를 다 흔든 것이잖아요. 제가 간부님들에게 말씀을 드렸었는데 마치 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사장이 있었으면 두세 번 잘렸을 정도로 그렇고, 그 기관은 모든 본부장이 다 날아간 셈이에요.

사장직무대행만 남았는데 그 양반은 8월에 끝나니까 모든 조직이 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시도 교통본부장 직위해제 되었고, 하여튼 어마어마한 일인데 하나하나 놓고 보면 서울시 산하 메트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거죠.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었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 이만큼 된 거잖아요. 하여튼 우리도 현장이 많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하신 것처럼 연습도 해보고, 체크도 해보고 해서 조금의 실수 이런 게 없도록 해주시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SH로부터 제출받은 2016년 6월30일 '건설안전사업본부 부장 회의록'의 내용 일부 /사진=김은혜 의원실 제공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