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창] 코로나 전염과 '기하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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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완화하며 긴장의 고삐를 잠시 늦춘 결과 코로나19가 다시 무서운 기세로 퍼지고 있다. 11월 초 하루 확진자가 100명 정도였는데 한 달 사이에 그 열 배가 늘었다.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말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무언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일상에서는 막연히 ‘엄청 빠르게 증가하는 양상’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수학에서 기하급수는 정확한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숫자를 한 개 골라보자. 아무 숫자라도 좋다. 꼭 자연수일 필요는 없지만 자연수가 익숙하니 1이 좋겠다. 이를 초기값이라고 하자. 자, 이제 초기값에 숫자를 하나 더 골라서 곱셈을 할 텐데, 기하급수적 증가의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보다 큰 숫자가 필요하다. 1보다 크면서도 가장 작은 자연수인 2를 골라 보겠다. 초기값 1에 2를 한 번 곱하면 1×2=2. 1에 2를 두 번 곱하면 1×2×2=4, 세 번 곱하면 1×2×2×2=8. 이런 식으로 초기값에 정해진 숫자를 여러 번 곱한 숫자를 차례로 모아놓은 것을 기하수열이라고 하고, 수열들을 모두 다 더한 것을 기하급수라고 한다. 기하수열의 신기한 점은 정해진 곱셈을 두세 번 수행할 때까지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는데, 몇 번 더 곱하고 나면 엄청나게 큰 숫자가 얻어진다는 점이다. 1에 2를 세 번 곱해서 나오는 숫자는 8로 여전히 한 자릿수다. 그런데 2를 열 번 곱하면 1024라는 숫자가 나온다. 곱셈을 고작 일곱 번 더 수행했을 뿐인데, 곱해준 숫자 2나 곱해준 횟수 10에 비해 훨씬 큰 숫자가 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서 2를 열 번 더 곱하면, 무려 100만이 넘는 숫자가 된다. 곱한 횟수가 열 번에서 스무 번으로 2배 늘어나는 동안 그 곱셈의 결과물은 1000배가 넘게 늘어난다.
물론 전 세계 인구는 한정돼 있고, 대부분의 전염병은 한 번 감염되면 재감염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전염병이 무작정 기하급수적으로만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전염병 전파 초기에는 기하급수를 잘 따른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1년 가까이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도가 극에 달한 지금이 어떻게 전파 초기냐고? 안타깝게도 전염병이 등장한 지 얼마나 오래됐냐 여부는 전염병 확산의 초기 단계 여부와 관계가 없다. 누적 확진자가 전 국민의 0.1%도 채 안 되는 현 상황의 어두운 면은 전염병 전파 양상이 얼마든지 이런 기하급수적 양상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전염병의 전파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R값을 1보다 작게 묶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방역당국이 너무 안일한 건 아니었는지, 정치·경제적 고려가 과학적 판단에 앞선 바람에 11월에 조기 진화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논의해 볼 필요도 충분히 있다. 그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바이러스는 대한민국 방역정책에 대해 알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실책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급증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 해당하는 생활 패턴으로는 R값을 1보다 작게 묶어둘 수 없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지난 두 달간 누렸던 상대적 자유는 달콤했지만 그 대가 역시 분명하다. 우리가 그 생활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길 희망하는 한 코로나가 우리 중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고 말 것이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마당에 이번이 마지막 고비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온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우위를 점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각자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또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개개인의 생활 습관을 조금만 더 지속하는 것. 누군가 그랬다 “고지가 저기 보인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일상에서는 막연히 ‘엄청 빠르게 증가하는 양상’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수학에서 기하급수는 정확한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숫자를 한 개 골라보자. 아무 숫자라도 좋다. 꼭 자연수일 필요는 없지만 자연수가 익숙하니 1이 좋겠다. 이를 초기값이라고 하자. 자, 이제 초기값에 숫자를 하나 더 골라서 곱셈을 할 텐데, 기하급수적 증가의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보다 큰 숫자가 필요하다. 1보다 크면서도 가장 작은 자연수인 2를 골라 보겠다. 초기값 1에 2를 한 번 곱하면 1×2=2. 1에 2를 두 번 곱하면 1×2×2=4, 세 번 곱하면 1×2×2×2=8. 이런 식으로 초기값에 정해진 숫자를 여러 번 곱한 숫자를 차례로 모아놓은 것을 기하수열이라고 하고, 수열들을 모두 다 더한 것을 기하급수라고 한다. 기하수열의 신기한 점은 정해진 곱셈을 두세 번 수행할 때까지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는데, 몇 번 더 곱하고 나면 엄청나게 큰 숫자가 얻어진다는 점이다. 1에 2를 세 번 곱해서 나오는 숫자는 8로 여전히 한 자릿수다. 그런데 2를 열 번 곱하면 1024라는 숫자가 나온다. 곱셈을 고작 일곱 번 더 수행했을 뿐인데, 곱해준 숫자 2나 곱해준 횟수 10에 비해 훨씬 큰 숫자가 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여기서 2를 열 번 더 곱하면, 무려 100만이 넘는 숫자가 된다. 곱한 횟수가 열 번에서 스무 번으로 2배 늘어나는 동안 그 곱셈의 결과물은 1000배가 넘게 늘어난다.
'R값'을 1보다 작게 묶어놔야
이게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다. 전염병에 걸린 감염자 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통상적으로 몇 명에게 병을 옮기는가를 나타내는 숫자를 재생산지수(R값)라고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의 R값은 3에 가깝다고 한다. 즉, 한 명의 감염자에서 시작하더라도 이 한 명이 3명을 감염시키고, 3명의 감염자가 3명씩 총 9명을 감염시키고, 9명의 감염자가 27명을 감염시키게 된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감염된 숫자들이 기하수열을 이루고, 이 숫자들의 총합인 전체 감염자 수가 바로 기하급수인 셈이다.물론 전 세계 인구는 한정돼 있고, 대부분의 전염병은 한 번 감염되면 재감염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전염병이 무작정 기하급수적으로만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전염병 전파 초기에는 기하급수를 잘 따른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지 1년 가까이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도가 극에 달한 지금이 어떻게 전파 초기냐고? 안타깝게도 전염병이 등장한 지 얼마나 오래됐냐 여부는 전염병 확산의 초기 단계 여부와 관계가 없다. 누적 확진자가 전 국민의 0.1%도 채 안 되는 현 상황의 어두운 면은 전염병 전파 양상이 얼마든지 이런 기하급수적 양상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전염병의 전파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R값을 1보다 작게 묶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신 맞기 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바이러스가 지닌 전염력 자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지만, 현실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병이 확산되는 정도를 제어할 방법은 있다. 아주 극단적으로 사람들끼리 전혀 만나지 않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그 자체로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R값은 0이다. 즉,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조절하면 R값이 3인 경우와 0인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조절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핵심이다.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방역당국이 너무 안일한 건 아니었는지, 정치·경제적 고려가 과학적 판단에 앞선 바람에 11월에 조기 진화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논의해 볼 필요도 충분히 있다. 그 와중에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바이러스는 대한민국 방역정책에 대해 알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실책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급증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에 해당하는 생활 패턴으로는 R값을 1보다 작게 묶어둘 수 없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지난 두 달간 누렸던 상대적 자유는 달콤했지만 그 대가 역시 분명하다. 우리가 그 생활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길 희망하는 한 코로나가 우리 중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고 말 것이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마당에 이번이 마지막 고비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힘들게 버텨온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우위를 점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각자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또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개개인의 생활 습관을 조금만 더 지속하는 것. 누군가 그랬다 “고지가 저기 보인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