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 경영 기틀 마련"…합격점 받은 삼성 준법위

출범 10개월 활동 평가

'캐스팅보트' 강일원 前 헌재 재판관
"계열사 준법문화 향상시켜"
실효성·독립성·지속가능성 '긍정'

이재용 재판부, 준법위 주목
양형에 긍정적 영향 미칠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준법감시위원회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한경DB
삼성 주요 계열사의 준법 경영을 목적으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출범 10개월을 맞았다. 경제계에선 준법위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삼성 계열사들이 준법위의 권고사항을 착실하게 이행하면서 ‘준법 경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준법위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았던 재판부의 요청으로 설치된 독립 기구다.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준법위 ‘숙제’ 대부분 해결

16일 경제계에 따르면 삼성 계열사들은 지난 10개월간 준법위의 ‘숙제’ 대부분을 처리했다. 준법위는 과거 총수 일가의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을 인정하고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 △무노조 경영 방침 공식화 △시민사회 신뢰 회복을 위반 방안 마련 △준법감시위원회 존속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조치 마련 등을 주문했다.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준법위의 요구들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사과문을 낭독하며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겠다”고 말했다. 준법위 요구 조건에 없었던 내용도 있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자녀들에게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4세 승계’ 가능성을 일축했다.

총수의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 계열사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삼성 7개 계열사가 준법 경영 강화를 위한 공동 협약을 맺은 것이 시작이었다. 노동 3권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사관계 자문그룹’도 설치했다. 노조 활동도 허용했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노조 공동교섭단과 첫 상견례를 하고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주요 계열사가 시민단체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맡을 전담자를 지정하는 등 시민사회와 소통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준법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란 점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네덜란드 출장을 떠나기 전 준법위원들을 찾아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며 준법감시위의 항구적인 활동을 보장했다.

‘캐스팅 보트’ 쥔 강일원 위원

준법위에 대한 재판부의 잣대는 경제계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3명에게 삼성의 활동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만들 것을 주문했고, 지난 14일 최종 보고서를 받았다. 법조계에선 보고서 내용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의 관심은 강일원 전문심리위원(전 헌법재판관)에게 쏠려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정한 홍순탁 회계사, 이 부회장 측이 뽑은 김경수 변호사는 각각 검찰과 삼성을 대변하는 반면 재판부 직권으로 선정된 강 위원의 보고서가 재판부의 판단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강 위원의 보고서는 대체로 삼성에 우호적이다. 보고서엔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법령에 따른 삼성 계열사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강화된 준법감시제도의 지속가능성 등 3개 항목 및 18개 세부 항목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다. 세부항목 중 절반 이상인 10개가 긍정적인 반응이다. 부정에 가까운 의견은 6개, 중립적 의견은 2개다.강 위원은 “경영권 승계, 노조 문제, 시민사회 소통 등 의제를 선정해 최고경영진에 개선 방안을 권고한 점은 긍정적”이라며 “삼성 계열사 내에 준법문화 향상에도 보탬이 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위원 임기가 2년이라는 점에서 독자성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기소된 사건에 준법위가 소극적이었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기소의 적절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컸다”며 “사실관계도 불분명해 (준법위가) 적극적인 조치를 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강 위원이 삼성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삼성으로선 어려운 고비를 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