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해임 증거 못 찾았나…애매한 '정직 2개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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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사찰' 의혹 등 징계수위 놓고 의견분분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지시’ ‘채널A 사건 수사·감찰 방해’ 등 주요 혐의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정직 2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당초 거론되던 해임이나 정직 3~6개월에 비해 징계 수위가 한 단계 낮아진 것이다. 법조계에선 징계위가 여론의 후폭풍과 향후 불복 소송전의 패소 가능성 등을 줄이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여(親與) 일색’으로 꾸려진 징계위마저 윤 총장의 직을 박탈할 만한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법조계 "예상보다 낮은 처벌"
"친여 일색 징계위원들마저
징계 정당성 찾지 못했을 것"
일각선 "고도의 실리 챙기기"
고강도 징계 여론 후폭풍 부담
정직으로 尹 임기 논란 피하고
월성원전 수사 '김빼기' 포석도
‘판사 사찰’ 등 4개 징계사유 인정
징계위는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비호하기 위해 ‘채널A 강요 미수 사건’의 수사와 감찰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른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을 맡은 재판부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관련 의혹도 징계사유에 포함시켰다. ‘추미애 사단’으로 꼽히는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해당 문건이) 재판부를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문건 배포에 반대했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윤 총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퇴임 이후 정계 진출과 관련해 명확히 선을 긋지 않았다는 혐의(정치적 중립의무 위반)도 징계사유 중 하나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채널A 감찰정보 외부 유출’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감찰 방해’ 의혹 등은 무혐의로 판단했다. ‘언론사 사주와의 부적절한 교류’ ‘감찰 대상자로서 감찰 협조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계사유는 있으나 징계처분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며 불문(不問) 결정을 내렸다.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새벽 “(징계 수위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어 상당히 오랫동안 토론했다”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오래 끄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오늘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심의위원 사이에선 해임부터 정직 4개월과 6개월 등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토론을 거쳐 정직 2개월로 결론이 났다.
“징계위 스스로 확신 없었던 것”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판사 사찰 지시와 수사 방해 등은 향후 직권남용 등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비리 혐의”라며 “그런데도 검찰총장에 대해 해임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징계위로서도 징계 정당성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신성식 징계위원(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윤 총장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표결에서 기권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반면 전략적 판단에 따라 윤 총장의 징계 수위가 결정됐다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윤 총장에 대해 내린 직무집행정지 조치가 이후 서울행정법원에 의해 뒤집힌 데 따른 ‘학습효과’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징계위가 직무정지 2개월 정도는 법원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판단하지 않아 윤 총장 측의 징계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직 카드’는 해임 시 “검찰청법에서 보장된 검찰총장의 2년 임기를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관측도 있다. 정직 2개월만으로도 충분히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권력형 비리 수사가 윤 총장의 리더십 부재 속에 당분간 표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달 검찰 인사에서 ‘원전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두봉 대전지검장 등을 교체하면 해당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윤 총장이 2개월 뒤 직무에 복귀할 즈음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윤 총장이 복귀하면 공수처가 그를 1호 수사 대상으로 삼아 재차 직무에서 배제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이인혁/안효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