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빨대도 음료에 부착 말라니"…세계 1위 빨대기업 서일 날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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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모든 부착형 빨대 안돼"국내 빨대 제조업체 서일의 김종인 회장은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미뤄온 인도네시아 수방 공장의 종이 빨대 생산시설 확충을 더 이상 늦출 수 없어서다.
지난달 입법 예고…내년 시행
美·유럽선 종이빨대 허용하는데
한국서만 원재료 관계없이 금지
"세계 유례없는 법" 업계 반발
김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연간 50억 개인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리는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려고 할 때 국내에서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환경부가 우유·주스·커피 등 음료 제품에 붙이는 부착형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김 회장은 17일 “세계적 흐름인 친환경 종이 빨대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라며 “종이 빨대 시장을 선점하려면 투자가 시급한데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종이 빨대까지 금지
환경부 개정안은 플라스틱과 종이 등 원재료에 관계없이 모든 빨대 부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제품에 붙이는 부착물을 줄이면 포장재 재활용이 쉬워진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환경부는 이르면 내년 중 이 법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플라스틱 빨대를 줄이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7월부터,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21년 말부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빨대만 대상일 뿐 친환경 종이 빨대는 사용할 수 있다.
환경부 개정안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재일 서일 부회장은 “빨대 시장도 친환경이 대세이기 때문에 서일도 2년 전부터 종이 빨대를 양산하고 있고, 더 나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 연구개발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분해되는 종이 빨대까지 못 쓰게 막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벼랑 끝 내몰린 업계
서일은 1979년 설립된 빨대 제조업체다. 1980년대 구부러지는 U자형 빨대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음료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U자형을 한 번 더 구부린 Z자형 빨대도 세계 처음으로 양산했다. 고부가가치 빨대 시장의 35%를 점유하는 세계 1위 업체로 알려져 있다. 서일이 국내 김포를 비롯해 세계 9개 공장에서 생산하는 빨대는 연간 500억 개를 넘는다. 금액으로는 약 2000억원어치다. 남다른 기술력 덕분에 창사 이래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서일을 비롯한 국내 빨대업계는 “느닷없는 정부의 과잉 규제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환경부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백억원 규모의 부착형 빨대 시장이 사라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소비자 반응과 평가를 엿보는 테스트베드(시험장) 역할을 하는 내수시장이 사라지면 수출 경쟁력도 잃을 것이란 우려다.
식음료 업계도 반발
환경부는 편의점 같은 매장에 빨대를 비치하는 게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필요한 소비자만 빨대를 가져가도록 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용기의 모양과 크기는 물론 음료 등 내용물의 종류와 점성 등에 따라 필요한 빨대의 지름과 형태 등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빨대 종류가 I자형부터 U자형, Z자형, 망원경형, 잠망경형까지 다양한 데다 빨대 상단에 3㎝가량의 홈이 필요한 빨대와 그렇지 않은 빨대 등 특성이 제각각이라는 설명이다.
식음료 업계도 반발하고 있다. 식음료 업계 관계자는 “매장은 복잡한 설명과 함께 빨대 저장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소비자는 여러 빨대 중 하나를 골라 써야 하는 등 불편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빨대 부착형 음료의 소비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환자와 노약자용으로 나오는 빨대 부착형 영양식도 생산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빨대 부착형 팩 등 용기는 연간 20억 개를 조금 넘는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