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균주 전쟁…메디톡스 '절반의 승리'

최악 피한 대웅제약

美 ITC '21개월 수입금지' 판결
예비판결 '10년 금지'서 대폭 줄어
대웅제약, 연방법원에 항소키로

메디톡스 "도용사실 인정된 것"
사진=연합뉴스
보툴리눔톡신(보톡스)의 균주 출처를 두고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벌여온 소송전에서 메디톡스가 승리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톡신 나보타의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면서다. 메디톡스는 국내 소송에서도 유리한 국면을 맞게 됐다. ITC가 나보타의 미국 수입금지 기간을 예비판결보다 크게 낮추면서 대웅제약이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ITC “균주 출처, 영업비밀 아니다”

ITC는 16일(현지시간) 나보타(미국 제품명 주보)가 관세법 337조를 위반했다며 21개월간 미국 내 수입 금지명령을 내렸다. 미국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60일 안에 승인 또는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이번 판결의 쟁점은 두 가지다. 대웅제약의 나보타 균주가 메디톡스의 메디톡신 균주와 같은지, 균주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였다. 지난 7월 예비 판결 당시엔 모두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10년 수입 금지란 결론이 나온 이유다.

ITC는 최종 판결에선 균주 도용을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예비 판결에선 균주 도용 혐의에 대해 8년, 제조공정 도용 혐의에 대해 21개월 수입금지 조치를 했다. 이번 판결에선 제조공정 도용만 인정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면서 균주 출처 자체는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예비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며 “예상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보툴리눔톡신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보툴리눔균에서 추출한 독성 단백질이다. 균주에서 뽑아낸 독소를 정제해 원액으로 만든다. 균주 출처는 국내 보톡스업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2006년 국내 업체 최초로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내놓은 메디톡스는 국내 후발 업체들이 자사 균주를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미국 ITC에 대웅제약과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제소했다.

기사회생한 대웅제약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균주 도용 사실이 처음으로 인정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웅제약을 상대로 진행 중인 여러 건의 국내 민형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ITC에 제출한 균주 염기서열 분석 자료 등이 국내 법정에도 제출돼 있다”며 “균주 도용 혐의가 드러난 만큼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은 미국 연방법원에 항소하고 수입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낼 계획이다. 이날부터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되면서다. 현재 미국 수출액은 연간 200억원 정도다. 21개월 뒤엔 수출이 재개된다. 에볼루스는 그동안 캐나다 등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유럽 시장 판매도 눈앞에 두고 있다.일각에선 양측의 합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에볼루스는 ITC 판결 후 보도자료에서 “합의와 항소 등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기 위해선 대웅제약과 에볼루스, 메디톡스와 메디톡스의 파트너사 엘러간 등 4자가 동의해야 한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수입 금지조치가 풀린 뒤 미국 시장점유율 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엘러간이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보툴리눔톡신 시장에서 엘러간은 약 70%(미용 부문)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경쟁 업체가 더 들어오면 납품 단가 인하 등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선 이번 ‘균주 전쟁’에서 메디톡스가 이겼지만 피해가 작지 않다고 보고 있다. 메디톡스는 올해 두 차례나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 취소 처분과 판매정지 처분을 받았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