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루이비통·삼성 꿈꾸던 기업 '줄부도'…"좀비기업 청산"
입력
수정
명품업계 큰 손…中루이비통 '산둥루이' 신음중국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왔던 대형 기업들이 잇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중국 신용 리스크가 재부각되고 있다.
칭화유니·화천그룹도 실적 악화에 유동성 위기
'쌍순환' 천명한 中…좀비기업·금융제도 정비 필요성
명품업계 큰 손…中루이비통 '산둥루이' 디폴트 선언
18일 중국 매체 금융계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섬유기업 산둥루이(山東如意) 그룹은 10억위안(약 17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했다. 산둥루이는 1993년 산둥성에 설립된 중국 민영 방직의류기업으로 '세계화를 통해 중국의 루이비통이 되는 것'을 목표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주목을 받았다. 2010년부터 일본 패션기업 레나운(RENOWN)·산드로(Sandro)·마주(Maje) 등을 보유한 프랑스 간판 패션기업 SMCP그룹, 영국 아쿠아스큐텀(Aquascutum), 라이크라(Lycra), 발리(Bally)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하며 '중국판 루이비통'을 꿈꿔왔다.하지만 과도한 M&A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독이 됐다. 산둥루이그룹의 지난 3분기까지 매출은 10억8100만위안(약 1810억94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지만, 순이익은 2063만위안(약 34억6000만원)에 그쳤다. 반면, 지난해까지 M&A에 투입된 금액만 350억위안(약 5조8700억원)으로 상당수 빚을 내 투자해 부채 상환이 사실상 힘들어졌다.
산둥루이은 민영기업이지만, 그간 산둥선 지역 경제를 지탱해온 기업인 만큼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왔다. 지난해 10월 산둥루이가 부채 리스크를 이유로 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기존 B2에서 B3로 강등되자, 지방정부 융자플랫폼(LGFV)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산둥루이그룹 지분 26%를 35억위안에 매수하는 방식으로 구제하기도 했다.하지만 지난 6월부터 LGFV는 산둥루이 자금 융통 요청을 거절하고 지난해 지분 매입 합의까지 취소하겠다고 밝히면서 산둥루이는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이게 됐다.
칭화유니·화천그룹도 실적 악화에 유동성 위기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 칭화유니그룹(淸華紫光)와 국영기업 화천자동차그룹 등 대형 국유기업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아 잇따라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칭화유니는 지난 10일 만기가 돌아온 4억 5000만 달러(약 4900억원)에 금리 연 6%인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한다고 지난 9일 밤 늦게 홍콩거래소에 공시했다. 칭화유니가 해외에서 발행된 달러 표시 회사채 상환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칭화유니는 향후 추가로 만기가 도래할 20억달러(약 2조1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들도 디폴트 위험이 있다고 공지했다.앞서 지난달 17일 칭화유니는 만기 도래한 13억위안(약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처음 디폴트가 발생해 중국 안팎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칭화유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나온 명문 칭화대가 51% 지분을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사실상 국무원이 경영하는 국유기업이다.
중국 청두의 대형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과 충칭의 D램 공장 건설로 무려 2000억위안(약 34조원)을 쏟아붓기도 했다. 정부의 막강한 지원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지만, 실적은 미진해 지속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연쇄 채무불이행 여파로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최고 수준인 AAA를 유지하던 칭화유니 회사채 등급은 AA, BBB를 거쳐 급기야 투자 부적격(투기) 등급인 B까지 곤두박질쳤다.
중국 랴오닝성의 중점기업이자, 독일 BMW의 중국 사업 합작 파트너인 화천자동차그룹은 최근 파산을 통해 구조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10월 10억위안(약 17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기 못해 디폴트에 빠졌다.
화천자동차는 1958년 설립된 회사로, 랴오닝성 정부가 80%의 지분을 보유한 국영기업이다. 1992년에는 중국 기업 최초로 미국 증시에 상장하기도 했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판매가 부진했지만 정부가 보증하는 대형 국유기업이 갑작스럽게 파산하자 투자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쌍순환' 천명한 中…좀비기업 퇴출·금융제도 정비 필요성
중국의 대형 국유기업의 잇따른 디폴트 사태는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좀비기업(부실기업)' 청산을 위해 칼을 빼들기 시작한 것이 배경이란 분석이다. 중국 국유기업은 지난해 총 1조5000억위안(약 256조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지만, 자산수익률은 0.7%에 불과했다. 중국이 금융시장 대외 개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유기업의 비효율성과 부실채권의 누적, 신용평가 신뢰성 문제 등 잠재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행보로 판단된다.이미 중국은 2015년 국무원 회의에서 부실기업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 제기하고 자생력이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청산을 본격화했다. 특히 지난 5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내수 시장을 강화하는 '쌍순환 발전 전략'을 제시하면서 이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됐다는 평가다. 쌍순환 전략으로 중국이 자체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경하면서 기업의 '질적성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디폴트 기업 업종이 대부분 제조업, 정보기술, 에너지, 소재 등 첨단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중국의 채권시장 규모는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대적인 금융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대외개방 수준이 낮은 상태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부실기업은 금융산업 완전개방과 시장화를 추진하는 데 구조적으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중국은 최근 미중 간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흐름 속에서 빠르게 독자생존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 축소와 대외 시장 개방을 앞둔 금융 시스템 정비 및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 필요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규모 디폴트를 당국이 용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