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못' 구하나 '안' 구하나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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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등 해외 선진국들이 속속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가운데 한국은 백신 없는 겨울을 보내게 됐다. 그동안 K방역 앞세우며 자화자찬에 열심이던 정부가 정작 코로나 극복의 핵심인 백신 확보에서는 정확한 일정이나 계획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한 정부의 말 자체가 그동안 오락가락한 것은 물론 애매한 표현으로 일관해 도대체 이 정부가 코로나 백신을 확보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간 정부가 밝힌 것은 모두 백신 확보 계획일 뿐, 실제로 확보된 백신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정부는 백신 공동 구매와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명 분, 글로벌 제약사와의 개별 협상으로 3400만명 분 등 총 4400만명 분의 백신 확보 계획을 밝혔다. 계약이 마무리 된 곳이 그나마 아스트라제네카 한 군데 정도다. 그런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백신 효과가 70% 정도로 가장 떨어지고 해외 사용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도입 시기도 일러야 내년 2~3월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신 안전성을 최우선시한다던 정부는 최근 또 말을 바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여부와 상관 없이 백신을 접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췄다. 선진국들이 FDA 승인을 받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자 초조해져서인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우리나라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공급 받겠다는 1000만명 분도 어떤 백신인지, 언제 들어올지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적어도 2곳 정도 이상은 연말까지 계약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검토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뭔가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 아무 것도 된 것이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백신 확보가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난 5월부터 백신 선구매협상에 나섰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가격과 임상 성공 여부 등 여러 불확실성 때문에 사후 책임을 두려워한 관료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신을 선구매했다가 잘못됐을 경우 협상을 이끈 누군가는 책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머뭇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얘기로 들린다. 청와대와 여권이 나서서 백신 확보를 독려했다면 관료들이 주춤거릴 이유가 없다. 월성 1호기 폐기 사례만 봐도 그렇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윗선'의 지시를 받은 정황이 짙은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기민하고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다. 공무원 탓을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정권 차원에서 백신 확보에 대해 무지했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백신 확보를 서두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대부분의 국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와대나 여당 쪽에서 백신 확보에 대해 무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구매 협상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서 백신의 조기 확보가 왜 중요한 지 등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 나쁜 시나리오는 백신 확보에 일부러 늑장을 부렸을 가능성이다. 현 집권세력은 사실 코로나에 여러가지 빚을 지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경제 실정을 덮을 수 있었고 보수단체의 반 정부 집회도 '재인산성'으로 불린 차벽까지 동원해 원천봉쇄할 수 있었다. 부동산을 비롯, 연이은 정책실패와 온갖 권력형 부정과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지만 국민의 관심을 온통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쏠리게 만들어 준 것도 코로나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전 세계에서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게 한국인이라는 조사까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코로나의 조기 종식이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환자 수 급증은 여권에도 좋게 작용하기 힘들다. 최근 뒤늦게 정부가 백신 확보에 부랴부랴 뛰어든 배경에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백신 확보에 무지했든, 고의적으로 이를 늦췄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이제 코로나와의 전투는 그 양상이 방역에서 백신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세계최대 확진자 발생국인 미국이 빠른 백신 접종으로 내년 4월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 수렁을 탈출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현 상황을 보면 웬만한 선진국보다 백신 접종에서 반년 이상 뒤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한국은 철저한 마스크 쓰기로 지역사회 감염도 타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두가지가 겹치면 집단면역 형성은 자칫 한국이 거의 꼴지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수렁에서 늦게 탈출하게 되면 꾸준한 환자발생도 문제지만 경제 타격도 이 못지 않게 우려된다. 6개월만 접종에서 뒤져도 예상되는 경제피해가 30조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비극적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경우 정부가 그토록 내세웠던 K방역은 한낱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초기에 코로나 확산이 다른나라에 비해 잘 억제된 것은 무엇보다 훌륭한 의료체계와 의료인들의 희생 봉사 때문이었고 또 한가지 이유는 국민들이 열심히 마스크를 쓴 덕분이었다. K방역의 성가를 높인 건 국민들이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고집스럽게 한 것이라고는 초기 의사들의 끝없는 요구에도 불구,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막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런 정부가 지금까지도 K방역을 국민 아닌 정부의 공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코로나 백신에 대한 정부의 말 자체가 그동안 오락가락한 것은 물론 애매한 표현으로 일관해 도대체 이 정부가 코로나 백신을 확보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간 정부가 밝힌 것은 모두 백신 확보 계획일 뿐, 실제로 확보된 백신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정부는 백신 공동 구매와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명 분, 글로벌 제약사와의 개별 협상으로 3400만명 분 등 총 4400만명 분의 백신 확보 계획을 밝혔다. 계약이 마무리 된 곳이 그나마 아스트라제네카 한 군데 정도다. 그런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백신 효과가 70% 정도로 가장 떨어지고 해외 사용 승인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도입 시기도 일러야 내년 2~3월이라고 한다.
그런데 백신 안전성을 최우선시한다던 정부는 최근 또 말을 바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여부와 상관 없이 백신을 접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췄다. 선진국들이 FDA 승인을 받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자 초조해져서인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우리나라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공급 받겠다는 1000만명 분도 어떤 백신인지, 언제 들어올지 모두가 불확실한 상태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적어도 2곳 정도 이상은 연말까지 계약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검토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뭔가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재 아무 것도 된 것이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백신 확보가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난 5월부터 백신 선구매협상에 나섰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가격과 임상 성공 여부 등 여러 불확실성 때문에 사후 책임을 두려워한 관료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신을 선구매했다가 잘못됐을 경우 협상을 이끈 누군가는 책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머뭇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얘기로 들린다. 청와대와 여권이 나서서 백신 확보를 독려했다면 관료들이 주춤거릴 이유가 없다. 월성 1호기 폐기 사례만 봐도 그렇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윗선'의 지시를 받은 정황이 짙은 공무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등 기민하고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다. 공무원 탓을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정권 차원에서 백신 확보에 대해 무지했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백신 확보를 서두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대부분의 국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청와대나 여당 쪽에서 백신 확보에 대해 무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구매 협상을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로나 같은 전염병에서 백신의 조기 확보가 왜 중요한 지 등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 나쁜 시나리오는 백신 확보에 일부러 늑장을 부렸을 가능성이다. 현 집권세력은 사실 코로나에 여러가지 빚을 지고 있다. 코로나 덕분에 경제 실정을 덮을 수 있었고 보수단체의 반 정부 집회도 '재인산성'으로 불린 차벽까지 동원해 원천봉쇄할 수 있었다. 부동산을 비롯, 연이은 정책실패와 온갖 권력형 부정과 비리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왔지만 국민의 관심을 온통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쏠리게 만들어 준 것도 코로나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전 세계에서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큰 게 한국인이라는 조사까지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코로나의 조기 종식이 한편으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환자 수 급증은 여권에도 좋게 작용하기 힘들다. 최근 뒤늦게 정부가 백신 확보에 부랴부랴 뛰어든 배경에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백신 확보에 무지했든, 고의적으로 이를 늦췄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이제 코로나와의 전투는 그 양상이 방역에서 백신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세계최대 확진자 발생국인 미국이 빠른 백신 접종으로 내년 4월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 수렁을 탈출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 현 상황을 보면 웬만한 선진국보다 백신 접종에서 반년 이상 뒤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한국은 철저한 마스크 쓰기로 지역사회 감염도 타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두가지가 겹치면 집단면역 형성은 자칫 한국이 거의 꼴지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수렁에서 늦게 탈출하게 되면 꾸준한 환자발생도 문제지만 경제 타격도 이 못지 않게 우려된다. 6개월만 접종에서 뒤져도 예상되는 경제피해가 30조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비극적 시나리오가 현실화 될 경우 정부가 그토록 내세웠던 K방역은 한낱 웃음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사실 초기에 코로나 확산이 다른나라에 비해 잘 억제된 것은 무엇보다 훌륭한 의료체계와 의료인들의 희생 봉사 때문이었고 또 한가지 이유는 국민들이 열심히 마스크를 쓴 덕분이었다. K방역의 성가를 높인 건 국민들이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고집스럽게 한 것이라고는 초기 의사들의 끝없는 요구에도 불구,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막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런 정부가 지금까지도 K방역을 국민 아닌 정부의 공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