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계곡'을 건너 '천사'를 만나고 5월에 내리는 눈을 맞는 기적…그게 창업이었어

시네마노믹스
영화 '조이'로 본 창업의 세계

남보다 앞서는 '혁신'보다 어려운 게
이 길이 옳다는 '확신'을 갖는 것
수많은 벽 앞의 창업자들이여
부디 오늘도 포기하지 마시길
“아주 멋진 것들을 만들어서 세상에 보여줄 거야. 숲 너머의 성엔 공주님과 왕자님이 살아. 멋진 것들을 만들었다고 날 성에 초대할지도 몰라.” “너도 잘생긴 왕자님이 필요해.” “아니, 필요 없어. 이건 아주 특별한 능력이거든.”

2016년 개봉한 영화 ‘조이’에서 조이(제니퍼 로렌스 분)는 방 안에서 드라마에만 빠져 사는 어머니, 바람둥이인 아버지, 무능력한 전남편, 여기에 할머니와 두 아이까지 떠안고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싱글맘이다. 어릴 때는 수많은 것을 만들며 발명가를 꿈꿨던 그는 정작 자신이 꿈꿨던 인생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 속에서 지쳐간다. 어느 날 걸레로 깨진 와인잔을 치우며 손을 다치게 된 조이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결국 그가 가진 ‘아주 특별한 능력’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천사’를 만나고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창업

조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스타트업과 비슷하다. 조이는 손을 쓰지 않고도 깨끗하게 물기를 짜낼 수 있는 대걸레 ‘미라클 몹’을 구상하고 아버지의 부유한 애인인 트루디(이사벨라 로셀리니 분)로부터 투자를 받아 시제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트루디와 같은 ‘엔젤투자자’는 스타트업에 천사 같은 존재다. 엔젤투자자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볼 때 사업성이 있으나 제품 개발자금이 부족한 창업 초기 단계에 투자금을 지원하는 개인투자자를 일컫는다. 엔젤투자자로부터 자금을 공급받던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하고 육성하는 기관)’나 ‘벤처캐피털(벤처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로부터 대형 투자를 받으며 몸집을 불린다. 이같이 혁신을 키우는 벤처투자는 국내에서만 4조원대 규모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규 벤처투자액은 2015년 2조858억원에서 2019년 4조2777억원으로 두 배가량 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제품을 만들었으나 조이는 마땅한 판매채널을 찾지 못한다. 마트 앞에서 직접 제품을 시연하다 쫓겨나는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품질은 좋지만, 다른 걸레 제품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해서다. 조이처럼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이 우수한 제품을 만들었음에도 적당한 판로를 찾지 못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를 ‘데스밸리’라고 한다. 데스밸리는 스타트업이 자금 조달이나 판로 확보를 못 해 존폐의 갈림길에 서는 창업 후 3~6년 기간을 지칭한다. 이 용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사이에 있는 국립공원 이름에서 유래했다. 평균기온이 높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으로 악명 높다. 돈이 마르고 피가 마르는 이 기간에 스타트업은 외주 프로젝트와 정부 연구 과제를 수주해 자금을 융통하는 것은 물론, 대표가 직접 ‘알바’를 뛰기까지 한다.

싱글맘이 홈쇼핑의 여제로

데스밸리를 겪던 조이는 전남편의 도움으로 대형 홈쇼핑 회사에서 제품을 소개하게 된다. 이렇게 개별 회사에 자신의 제품, 사업을 소개할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여러 투자사 앞에서 자신의 제품을 소개할 수도 있다. 창업자들과 잠재적 투자자들이 만나 눈도장을 찍고, 실무진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친목을 쌓는 네트워킹 행사인 ‘데모데이’가 대표적인 예다.

결국 조이는 홈쇼핑 채널에서 물건을 광고할 기회를 얻는다. 처음에는 쇼호스트가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하나도 판매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이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쇼호스트로 직접 나서 자신이 왜 이 제품을 만들게 됐는지, 이 제품이 다른 제품에 비해 얼마나 혁신적인지를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호소하며 수만 개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운다. 대걸레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품을 판매하며 ‘홈쇼핑의 여제’로 승승장구한 그는 자신이 출연한 홈쇼핑 회사에 견줄 만한 회사의 사장이 된다.요즘 같으면 조이가 홈쇼핑 대신 ‘라이브커머스’에 출연했을 것이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커머스의 합성어인 라이브커머스는 실시간으로 쇼호스트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고 바로 판매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TV홈쇼핑과 비슷하다.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장벽이 낮아 초보 사업자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와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보니 소통을 중요시하는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전통의 TV홈쇼핑 강호들도 라이브커머스 업체들을 잇달아 투자·인수하고 있는 추세다. 현대홈쇼핑은 라이브커머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뷰티 전문 멀티채널네트워크(MCN)에 12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기업가의 혁신이 필요

평범한 싱글맘에서 혁신을 낳는 기업가로 변신한 조이는 한국 경제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정부가 조이와 같은 창업가를 더욱 많이 양성해야 경제성장의 정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슘페터는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경제발전은 외부 여건 변화에 의한 단순한 순응과 수용이 아니라 경제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다”며 “기업가의 혁신, 즉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이 경제발전을 자극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슘페터에 따르면 기업가의 혁신만 있다면 자본주의는 무한히 발전하고, 노동자의 생활 수준도 개선된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폴 로머 뉴욕대 교수도 기술과 혁신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내생적 성장이론’으로 슘페터의 주장을 뒷받침했다.이 영화는 정부가 창업 기업에 무엇을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조이가 사업화와 마케팅,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같이 수많은 창업자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많은 창업자가 효과적인 정책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기술개발·판로·마케팅·해외진출 지원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단순히 ‘돈’만 뿌릴 게 아니라 종합적이고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창업이란 따뜻한 날에 눈 내리는 기적

이 영화의 포스터는 눈을 맞는 조이다. 텍사스에서 회사를 살리는 협상을 끝내고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장난감을 사기 위해 장난감 가게 쇼윈도 앞에 서 있다가, 가게에 설치된 기계에서 흩날리는 가짜 눈을 맞는 조이를 포착한 것이다. 대체로 온난한 기후의 텍사스에 눈이 오는 일은 드문 일이다. 영화 포스터는 그 드문 확률을 만들어내는 조이의 기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숨어있으면 안전하긴 하지, 아무도 못 보니까. 그렇지만 웃긴 게 뭔지 알아? 넌 너 자신한테서도 숨어버렸어.” 조이는 꿈에서 17년 전 자신으로부터 이런 일침을 듣는다. 꿈에서 깨자마자 조이는 한 발을 더 내디뎌 사업을 결심한다. 일단 자신으로부터 숨지 않기로 결심한 그는 가족으로부터 모욕을 들어도, 파산 위기에 몰려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당했을 때도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을 낳을 수 있었다. 수많은 벽 앞에서 지친 창업가들이 이 영화에서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당신들도 따뜻한 날에 눈을 내리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