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예능으로 파고든 VR·AI 기술

고인 재조명 또는 코로나 속 실재감 강화…'언캐니 밸리' 극복은 과제
IT 영역에서만 익숙했던 VR(가상현실)과 AI(인공지능) 기술이 안방극장으로 파고들어 시청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예능가에서는 김광석·김현식·거북이 터틀맨 등 지금은 세상에 없는 가수들을 최신 기술로 소환해내는 데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엠넷 'AI음악프로젝트 다시 한번'은 터틀맨의 목소리를 복원했다.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옛 모습 그대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특유의 창법으로 '시작'의 후렴구를 부르고, 다른 멤버들과 안무까지 소화하는 모습은 유족과 멤버, 팬들을 울렸다. AI음악플랫폼 지니에 따르면 이 방송 후 혼성그룹 거북이의 전체 음원 평균 스트리밍이 방송 전주보다 169% 증가하기도 했다.

이어 영원한 가객이자 가수들이 추앙하는 가수 김현식 편도 반향을 일으켰다.

30주기에 맞춰 무대에 부활한 그는 작곡가 김형석의 반주에 맞춰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홀연히 사라지는 그의 홀로그램에 그의 동생은 눈물을 쏟았다.
SBS TV 신년특집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은 김광석의 목소리를 그대로 학습한 AI가 사후 발매된 곡인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부르는 티저 영상을 공개해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잠깐 등장한 모습만으로도 김광석만의 창법과 호흡 등이 그대로 복원돼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안겼다. 'AI vs 인간'은 이 밖에도 골프 여제 박세리와 AI 골퍼 엘드릭의 롱드라이브·홀인원·퍼팅 승부, 사람과 AI 간 프로파일링·주식 투자 대결 등을 예고한 상태다.

꼭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도 고인을 복원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지난 2월 MBC TV가 선보인 'MBC스페셜-특집 VR 휴먼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는 희귀 난치병으로 딸을 떠나보낸 엄마가 VR 기술로 딸과 재회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 TV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지난 10일에는 KBS1라디오(97.3㎒)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 씨 2주기를 맞아 특집 다큐 '두 엄마 이야기-소선이 미숙에게, 미숙이 소선에게'를 방송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故) 이소선 여사의 육성을 활용,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가상으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VR·AI 기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속 TV로 세상을 만나는 시간이 늘어난 가운데 콘텐츠의 생생함을 살리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시작한 SBS 필(FiL)의 '라이브 온 언플러그드'는 전자 악기를 사용하지 않은 라이브 무대를 시네마 카메라로 촬영한 4K 영상과 3D 180도 VR 콘텐츠로 선보이며 날 것의 현장감을 전달한다.

MBC가 최근 네이버나우를 통해 선보인 '온 더 무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장현실(XR)을 활용한 온라인 라이브 콘서트로 노래들의 세계관을 실감 나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NQQ채널 예능 '위플레이2' 역시 연예인들이 가상현실에서 갑작스럽게 펼쳐지는 대규모 게임을 즐기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앞서 6월 KTV 'DMZ(비무장지대) 공존'은 360도 VR 카메라로 DMZ 곳곳의 빼어난 풍광과 살아 움직이는 자연 생태계를 촬영, 특수영상을 제공해 배우 이정진의 내레이션과 함께 생생함을 극대화했다.

예능·다큐에서 최신 기술들이 활발하게 사용되자 드라마 시장에서도 이 소재에 주목하고 있다.

완벽한 AI 비서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나 홀로 그대'나, 사랑은 하고 싶지만 오답은 피하고 싶은 주인공이 '조상신'이라는 AI 냉장고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로코극 MBC에브리원 '제발 그 남자 만나지 마요', AI와 퀴즈쇼를 벌이는 내용의 EBS 웹드라마 '슈퍼스마트 퀴즈쇼' 등이 그 사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21일 "아직 완벽하게 구현된 상태는 아니지만 정부 주도로 VR 관련 콘텐츠를 육성·지원하는 부분이 많기도 해서 새로운 시도가 방송가에서 계속 나올 것으로 본다"며 "특히 음악은 익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장르라 최근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 즉 인간은 아닌데 인간과 너무 똑같아지면 굉장히 소름 끼치는 불편한 심리가 있을 수 있고 윤리적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잘 설득하느냐도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