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아니고 'DL'입니다"…81년 만에 돈의문 시대 개막

DL그룹 광화문 수송동 대림빌딩에서 D타워 돈의문으로 이전
인천 부평에서 시작해 81년간 혁신·성장의 역사 일궈
"그룹사 집결,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 다짐"
DL그룹이 집결하는 돈의문 D타워.
대림산업에서 내년 1월 지주사 체제로 출범하는 DL그룹이 돈의문 시대를 개막했다. DL은 서울 종로구 통일로 134에 위치한 D타워 돈의문 빌딩을 사옥으로 사용하게 된다. 종로구 수송동 대림빌딩과 D타워 광화문에서 근무하던 DL E&C 임직원과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근무하던 DL케미칼, DL에너지 등 계열사 임직원들이 D타워 돈의문으로 총 집결하게 된다.

D타워 돈의문은 지하 7층~지상 26층, 연면적 8만6224㎡ 규모다. DL그룹 계열사 6곳, 임직원 약 3000명이 근무하게 된다. DL은 새로운 사옥에서 그룹의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신시장을 개척을 통해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할 계획이다. DL은 1939년 인천 부평역 앞 ‘부림상회’에서 시작됐다. 81년간 서울 용산구 동자동, 광화문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혁신과 성장을 거듭해왔다. DL은 그동안 건설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이 독립적으로 성장전략을 추진해 나갈 최적화된 시점을 모색했다. 기업분할을 통해서 산업별 특성에 맞는 개별 성장전략을 추구하고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통해 주주가치 제고와 주주이익 극대화가 가능하다고 봐서다.

DL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할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기존 내부거래위원회를 확대 재편했다.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운영할 방침이다. 사외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 제도도 함께 도입한다.

기존 대림산업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크게 건설과 석유화학을 양 축으로 하는 지배구조로 개편된다. 각 사업별 경쟁력과 역량에 최적화된 디벨로퍼 사업을 발굴해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지주회사인 DL㈜는 계열사 별 독자적인 성장전략을 지원하고 조율하는 역할에 집중한다. DL E&C는 디지털 혁신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을 혁신하고, 수주 중심의 전통적 건설사에서 탈피해 디벨로퍼 중심의 토탈 솔루션(Total Solution) 사업자로 성장해 나갈 계획이다. DL Chemical은 기존 범용 제품의 생산 설비 증설과 생산 거점을 다원화하는 한편, 윤활유와 의료용 신소재 등 고부가가치 스페셜티(Specialty) 사업 진출을 통해서 글로벌 석유화학회사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자본금 4만원' 인천 부평에서 부림상회로 시작…단기간 비약적 발전

DL은 1939년 10월 10일 현재 인천시 부평구 경인선 부평역 앞 로터리 부근 길가 초가집에 창업주 이재준 회장이 부림상회를 개업하며 시작됐다. 당시 부평 일대는 대부분이 농경지인 한적한 지역이었다. 이재준 회장은 향후 부평이 인천과 영등포공업지대와 연결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경인선 철도와 국도가 통과하는 지역으로 곧 경인공업지구의 핵심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서울 진출의 발판이 된 동자동 대림산업 사옥. / 자료=대림산업
부림상회는 목재와 철물 등 취급하는 건자재 사업으로 시작해 제재공장 설립과 원목 생산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창업 5년여만에 자본금 4만원에서 400만원의 회사가 됐다. 150여명의 정직원에 현장 인부와 고용인까지 합치면 상시 3000~4000 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1947년 사명을 대림산업으로 변경하며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용산구 동자동에 서울지점을 개설하고 주업종이었던 목재업을 기반으로 건설업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1954년에는 동자동 서울지점 자리에 당시 서울 시내에서는 고층 빌딩에 속하는 4층 건물을 준공했다. 1967년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하면서 도약의 시기로 들어서게 됐다.당시 해방과 6·25 동란 이후 본격적인 재건 사업이 이뤄지기 시작하며 국가 시설물 및 공공 건물 복구 공사는 물론 플랜트 등 국가 기간산업 건설에 참여하게 되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도로, 철도, 댐, 항만, 발전소, 주상복합아파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빠르게 해외 건설시장 개척에 나섰다. 1966년 1월 28일 미 해군시설처에서 발주한 베트남의 라치기아 항만 항타 공사를 87만7000달러에 수주하고 같은 해 2월초에 공사 착수금을 한국은행에 송금하면서 ‘해외 건설 외화 획득 1호’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1973년 11월에는 사우디에 지점을 설치하고 아람코가 발주한 정유공장 공사를 16만 달러에 수주하면서 ‘해외 플랜트 수출 1호’라는쾌거를 달성했다. 1975년 9월 1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국내 건설사 중 최초로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종로 수송동 시대, 혁신의 역사 이뤄

1975년 10월 종로구 수송동 146-12번지에 신사옥 공사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6년 12월 수송동 ‘대림빌딩’을 준공해 입주하며 수송동 시대가 개막됐다. 건설 당시 대림빌딩은 지하 3층~지상 12층, 연면적 2만㎡ 규모의 초현대식 빌딩이었다. 대림빌딩은 이후 1984년 증축, 2002년 리모델링을 거쳐 44년 동안 사옥으로 사용했다.
대림산업의 44년간 사옥으로 혁신성장을 함께했던 수송동 전경. / 자료=대림산업
대림산업은 이후 국내 최고(最古)의 건설회사로서 기본과 원칙에 입각한 위기관리와 혁신 활동을 이어왔다. 1962년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제도가 생긴 이래 59년 연속 10대 건설사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1980년에는 건설회사로는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사장교와 현수교 기술 국내화, 국내 최초 냉난방 에너지 100% 자립 건물 상용화 등을 통해 대한민국 건설 기술 혁신의 역사를 이뤄왔다. 주택 분야에서도 2000년 최초의 아파트 브랜드인 'e편한세상'을 런칭하며 브랜드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최근에는 아크로 리버파크,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등을 선보이며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79년에는 호남에틸렌을 인수하며 석유화학사업에 진출했다. 호남에틸렌은 1987년 흡수합병되어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로 출범했다. 1991년 석유화학사업부 대덕연구소를 설립했다. 1993년에는 폴리부텐 제조기술을 자체 개발했고 2007년 국내 최초로 메탈로센 폴리에틸렌의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2015년에는 국내 석유화학기업 중에는 최초로 미국시장에 라이선스(폴리부텐) 수출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수술용 장갑 라텍스를 생산하는 미국 크레이튼(Kraton)사의 카리플렉스 사업부를 5억300만(약 6200억원) 달러에 인수하며 포트폴리오 확장 및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