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과실로도 감옥 가나"…제조·건설 中企선 벌써 'CEO 기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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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중대재해법 입법 중단해 달라" 거듭 호소서울의 한 중소 제조업체 김모 대표는 지난 4월 밤늦게까지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었다. 직원이 쓰레기통에 버린 담뱃불로 공장에 불이 나자 그는 피의자 신분으로 수차례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1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시행으로 산업재해 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된 데 따른 것이다. 다행히 주변 차량 블랙박스를 통해 발화원인이 밝혀져 화를 면했지만 김 대표는 아직도 그때의 충격이 남아 있다고 했다.
사망사고 땐 5년 이상 징역…흉악범 적용되는 '하한' 규정
"헌법·형벌원칙에 위배…이렇게 처벌 강화한 입법사례 없어"
中企 오너 "나도 옥살이할 판…대표 공모해도 다들 손사래"
기업인들이 대거 예비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다. 위탁기업(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한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의 국회 통과가 예고되면서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음달 8일까지 이어지는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법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5년 이상’ 징역
중대재해법은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하는 등 경영인과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였다. 징역 몇 년 이하로 ‘상한’을 정하는 대부분의 법 처벌 조항과 달리 극소수의 흉악범죄에만 적용되는 ‘하한’을 규정했다. 현행법 가운데 중대재해법처럼 ‘징역 5년 이상’으로 처벌을 정한 범죄는 형법상 살인죄(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아동·청소년 성폭행 또는 성착취물 제작·상영죄(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정도다. 중대재해법은 수탁기업(하청업체) 직원들이 일으킨 사고에 대해 원청업체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고, 대표이사가 아니더라도 사업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는 오너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산업안전 전문가인 이상철 태평양 변호사는 “범죄와 처벌 수위가 비례하지 않아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고, 사업주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린다는 측면에서 ‘자기 책임의 원칙’을 어겼으며 형벌 상호 간 균형의 원칙도 무너진 과잉입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실범에 대해 이렇게까지 처벌을 강화한 입법사례는 없었다”고 했다.
이 여파로 산업재해가 빈번한 건설 및 제조 관련 중소업체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중소기업 오너는 “최근 임기가 끝난 대표 자리를 공모 중인데 아무도 지원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 과실 또는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로 경영인이 옥살이를 해야 한다면 누가 사업을 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사형으로도 사고율 안 줄어”
인천 남동산업단지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중대재해법상 처벌 수위를 징역 5년 이상이 아니라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높여도 사고가 줄지 않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업무상 재해·사망 사고의 90% 이상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산재 사망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건설업의 최근 5년간 사망사고 절반은 보호구 미착용 등 근로자 개인 부주의가 원인이다. 정달홍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장은 “현장 근로자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산재가 80%가 넘는데도 모든 사고 책임을 대표이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제발 멈춰달라” 호소하는 경제계
경제계는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자에게 과도한 처벌을 규정하는 중대재해법 제정을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지난 16일 30개 경제단체가 모여 입법 중단을 호소한 지 1주일도 채 안돼서다.중소기업을 대표한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연합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설협회 등이 참가했다.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의무조항이 무려 1222개에 달한다”며 “여기에 중대재해법까지 제정되면 기업들이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우리보다 산업안전정책 수준이 높은 선진국은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예방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한국은 예방활동은 소홀히 한 채 CEO 처벌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며 “산업안전정책 기조를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선/민경진 기자 leew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