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비판에도…대북전단법 국무회의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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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법 몰이해 탓" 반박정부·여당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도 강행 처리한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안)’과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두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대북 전단 금지법은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공포·시행될 경우 인권 가치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와 시작부터 마찰음을 빚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사회의 잇단 비판에 “전단 금지법에 대한 몰이해 탓”이라고 반박해온 정부는 이날도 “국민과 소통하며 법 시행을 준비할 것”이라며 재차 강행 의사를 밝혔다.
文 재가·공포 거쳐 내년 3월 시행
경제질서 교란 정보 수집허용
새 국정원법은 무차별 사찰 우려
한·미 관계 뇌관 될 수도
논란의 전단 금지법, 내년 3월 시행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지난 14일 국회를 통과한 대북 전단 금지법 공포안을 심의·의결했다. 남북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한 전단 살포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게 골자다. 미국과 영국 의회, 유엔 등이 잇달아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처사”라며 법 개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 법은 문 대통령 재가와 공포를 거쳐 내년 3월 말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법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겠다”고 말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도 20일 “국내외 비평가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전단 금지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전단 살포는 북한 당국의 주민 통제를 강화해 탈북자 가족을 위협하고 북한 인권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전단 금지법이 탈북 단체 등의 표현의 자유를 막고 북한의 인권 탄압도 외면한다는 주장은 이 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법 개정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거세지자 통일부는 17일 부랴부랴 50여 개 주한 외교공관에 “표현의 자유가 헌법의 권리이긴 하지만 비무장지대 지역 주민들의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자료를 보내기도 했다.
美 국무부, 전단법 반대의사 표명
의회 차원에서 여러 차례 전단 금지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미국은 이날 국무부 명의의 논평을 통해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은 미국 정부의 우선순위 문제”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북한 주민이 통제된 정보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전 세계적인 정책으로서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보호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전단 금지법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됐다.외교 전문가들은 전단 금지법이 바이든 행정부 시대 한·미 간 잠재적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미국 국내법상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돼야 대북 제재도 완화될 수 있다”며 “전단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한·미 간 대북 접근법이 처음부터 틀어질 위험이 커졌다”고 했다.“국정원법, 무차별 사찰로 이어질 수도”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국정원이 대공, 국가보안법 사건 등에 대한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고, ‘경제 교란 행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제 질서 교란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명시되지 않았다.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날 성명을 내고 “개정안에 광범위하고 모호한 용어가 포함돼 있어 국정원이 정보 수집 권한을 남용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HRW는 경제 질서 교란 행위에 대한 정보 수집이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이 개정안의 국회 표결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내국인의 ‘해외 연계’ 교란 행위에 대해서만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법 조항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해외와 밀접하게 교류하는 경제인에 대한 무차별 사찰이 이뤄질 수 있다”며 표결에 불참했다. HRW도 “개정안이 외국인과 금융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인, 비정부 기구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송영찬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