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는 택배기사 사용자" "아니다"…오락가락 판결에 업계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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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사용자성' 놓고 올해 다섯 차례 판결 엇갈려원청사업자인 CJ대한통운이 별도 사업주가 운영하는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법적 ‘사용자’인지를 놓고 법원 판결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올해만 다섯 차례나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 더구나 이런 판결이 소송가액을 다투는 민사재판이 아니라 혐의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서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이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는 분위기지만, 하급심 판결이 그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단은 2018년 택배노조 파업
CJ에서 직영 기사들 투입하자
반발하는 조합원들 재판 넘겨져
전국 하급심 판결 제각각
부산지법 "원청인 CJ가 사용자"
창원·대구지법 "고용관계 없다"
1년 새 조합원 유죄 3 vs 무죄 2
사건은 전국택배연대노조가 파업에 나선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택배대란을 우려한 CJ대한통운은 직영 택배기사 차량을 투입했다. 전국택배연대노조 조합원들은 트럭에 실린 화물을 바닥으로 쏟아내거나 차량을 막아서며 저항했다. 검찰은 조합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겼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올해 지방법원 다섯 곳에서 1심 선고가 났다. 선고는 엇갈렸다. 2월과 9월 선고에선 무죄가, 8·10·12월엔 유죄가 나왔다.재판부가 각각 다른 법리해석을 내놓은 조항은 노조법 43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사용자는 쟁의기간 중 그 쟁의로 중단된 업무를 이어가기 위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사용자인지, 만약 사용자라면 CJ대한통운이 투입한 직영 택배기사는 사업과 관계 없는 자인지 여부가 쟁점이 된다. 사용자가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투입했다면 대체인력 투입 자체가 위법이어서 조합원들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로 CJ대한통운이 사용자가 아니거나, 사용자라도 사업과 관계있는 자를 투입했다면 조합원들의 업무방해 행위는 유죄로 볼 수 있다.“원청회사가 택배기사 ‘사용자’” 첫 판단
지난 9월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이며 업무에 투입된 인력은 사업과 관계없는 자라고 판단해 조합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택배기사들과 근로계약관계가 없는 원청업체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라고 명시한 첫 판결이다.재판부는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개념보다 확장돼야 한다”며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에선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의 일정 부분을 담당해 ‘사용자’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사 측이 직영기사를 투입한 행위에 대해서도 “CJ대한통운이 서울, 충북 등 다른 지역의 택배기사를 투입해 관계없는 자를 대체투입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봤다.지난 2월 조합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구지법 김천지원 역시 사측이 투입한 인력을 ‘관계없는 자’로 해석했다. ‘사용자성’은 명확히 판시하지 않았지만 노조법 43조는 인력투입 주체를 사용자로 규정하고 있어 CJ대한통운을 사용자로 전제한 판결로 해석된다.
유죄 선고에도 사용자성 해석 엇갈려
반면 8월 창원지법과 10월 대구지법 경주지원 판결은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부정하며 조합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애초에 노조법 43조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도 적법하다는 취지다.창원지법은 “CJ대한통운은 노조원들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으므로 ‘간접고용’에서 쟁의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지법은 “집배점주들이 택배기사와 위수탁계약을 맺는데, CJ대한통운이 계약 내용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지난 16일 울산지법은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체 투입한 기사들이 사업과 관계 있는 자이므로 대체인력 투입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똑같이 조합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사용자성 인정 여부는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법조계에선 사용자성이 넓게 인정되는 추세 속에 형사재판까지 유·무죄가 엇갈리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9월 대법원은 하청 근로자들이 원청업체에 가서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첫 판결을 내놨다. 원청 사업주가 법적으론 하청 근로자들과 아무 관계가 없고 그들의 쟁의로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업장은 근로자 삶의 터전이므로 이를 용인하라는 취지였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부합하는 판결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사용자의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노조법 43조는 원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간 다수의 실무 견해”라며 “원청 기업에도 이 조항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당장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는 CJ대한통운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현장에서도 혼란이 극심할 것”이라며 “법 조항에 ‘여기서 사용주란 원청까지 포함한다 혹은 원청은 제외한다’는 식으로 법을 보완해 현장 혼란을 줄여줄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