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계 최초로 백신접종할 이유없어…한두달 관찰기회 다행"

"미국·영국은 백신 외 대안 없어…반면교사로 삼기에 부적절"
전날 청와대 이어 중대본·질병청 '백신 늑장 대응' 비난에 적극 반박
"7월부터 수개월간 협상, 안전성 입증 안 된 상태서 신중하게 진행"
정부가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도입 물량과 시기를 높고 '정책 실패'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우리나라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할 이유가 없고, 백신 안전성은 국민을 위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야당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백신 확보가 뒤늦었다며 책임론을 제기하자 전날 청와대가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중대본도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고 반박에 나선 것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이날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최근 우리 사회 분위기가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아야 하는 것처럼, 1등 경쟁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방역당국으로서 상당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신은 안전성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특히 코로나19 백신은 개발과정이 상당히 단축돼 안전성은 국민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라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이런 사정 때문에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하고,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반장은 백신 접종을 시작한 국가들과 한국의 코로나19 유행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과 영국이 접종을 시작했는데, 하루에 미국은 20만명, 영국은 한 3만5천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미국의 누적 사망자는 31만명, 영국은 6만7천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이어 "이들 국가는 백신 외에는 채택할 수 있는 방역전략이 별로 없기에 백신에 전력투구하고, 자국 기업을 통해 백신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접종을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저희가 이런 국가를 반면교사로 삼기에는 다소 부적절하고,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려할 때 세계에서 1, 2등으로 백신을 맞는 국가가 될 이유는 없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손 반장은 내년 말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접종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그는 "집단면역의 형성까지 짧게는 반 년, 길게는 9∼10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접종 우선순위를 정하고 유통에 문제가 없게끔 차근차근 범위를 넓혀 나가면서 백신에 대한 기대감으로 코로나19가 더 확산하는 사태를 막고 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손 반장은 국내 접종 예상시기에 대해선 "안전성이 확인이 되는 순간 최대한 신속하게 위험도가 큰 대상으로 중심으로 예방접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접종을 꼭 하겠다는 긍정적인 반응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백신 도입을 총괄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지원위원회 사무국과 질병관리청도 이날 '늑장 대응' 논란에 대해 반박자료를 배포하며 대응에 나섰다.

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이 9월에야 해외 백신 확보를 주문했고, 정부가 실제 행동에 나선 것은 11월이었다'는 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 "11월 말 아스트라제네카와의 계약 체결, 얀센·화이자와의 구매약관 서명, 모더나와의 공급 확약 등은 수개월 간의 협상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위원회는 "정부는 6월 29일부터 백신도입 전담반(TF)을 운영해 7월부터 개별 기업과 협상을 진행했고, 아스트라제네카와는 7월 21일, 노바백스와는 8월 13일에 구매 의향서(Letter of Intent)를 체결했다"며 "머크와 GSK까지 합치면 제약사-관계부처 합동회의는 10여 차례 있었고, 실무 차원의 협의는 주 2∼3회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제약사들과 7월부터 논의에 들어가 기밀누설방지협약(CDA), 협력의향서(LOI)에 합의하고, 9∼11월에 공급 물량 등을 확정하는 구매약관을 검토했고, 11월부터는 최종 계약서를 논의하는 등 수개월에 걸쳐 협상을 해왔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을 불가피하게 선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심각한 부작용으로 백신 임상시험이 중단되는 사태도 있어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협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도 '백신을 놓쳤다'는 비판은 결과론적인 지적으로, 당시 백신 개발 동향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7월 당시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가 백신 개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두 백신 모두 냉장보관이 가능하고 국내에 생산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를 주력으로 하면서 화이자와 모더나의 임상결과를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그는 "그런데 임상에 차질이 생기면서 화이자, 모더나가 격차를 좁혔고, 더 좋은 결과로 임상을 끝냈다"며 "결과적으로 역전 상황이 발생해 정부 판단에 상당한 어려움을 줬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