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을 범죄단체 취급하는 나라

유병연 중소기업부장
기업과 범죄단체는 모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더의 지휘 아래 조직을 구성한다. 조직 관리를 위해 내부 문화와 규율을 만드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렇다고 기업을 범죄단체로 보는 이는 드물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법 테두리의 준수 여부다. 기업은 범죄단체와 달리 합법적 목적을 위해 구성된다. 기업범죄는 조직범죄와 달리 대부분 고의가 아니라 과실과 부주의 탓에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을 무시한 채 기업을 위장된 범죄단체로, 기업인을 예비 범죄자로 보는 곳이 있다. 바로 여의도 정치권이다. 요즘 국회에서 양산하는 반(反)기업법안을 보면 그렇다. 행위자와 법인·사용주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은 기본이다. 기업에 대한 벌금 외에 사업주 개인에 대한 처벌, 영업중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4중 규제’도 흔하다.

기업인을 흉악범 수준 처벌

여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강행 처리를 예고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처벌 규정을 담고 있다. 통상 징역 몇 년 이하로 상한을 규정하는 대부분의 법 처벌 조항과 달리 징역형의 ‘하한’을 못박고 있다. 흉악범이나 중대범죄에 한해 판사 재량을 제한하기 위해 기본 형량에 족쇄를 거는 방식이다. 현행법 가운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보다 수위가 높은 처벌은 징역 7~10년 이상인 강도살인, 직계가족에 대한 존속살해, 테러 정도다.

기업 경영에는 본질적으로 수많은 위험이 내재돼 있다. 그런 위험을 떠안는 게 기업가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은 경영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켜주는 주식회사 시스템을 만나 인류사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주식회사 체제가 근대사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거꾸로 경영과 그 외 모든 관리 사항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고, 징역형을 가한다면 기업가 정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유시장' 헌법정신 훼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가치다.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해 개인은 물론 기업의 자유를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동시에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등을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119조 1항은 원칙 규정이고, 2항은 보충적·예외적 규정이라는 게 헌법학계의 통설적 견해다. 원칙적으로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보장하되, 예외적으로 자유시장경제의 큰 틀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국가 규제를 허용한다는 의미다.또 헌법 제37조 제2항을 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목적이 정당할 뿐 아니라 수단도 타당할 때만 제한을 허용한다는 의미다.

이런 취지에 비춰볼 때 자유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합법적인 기업활동을 적대시하고, 반기업정서를 바탕으로 산업재해에 ‘5년 이상’이라는 과도한 징역형을 가하는 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하는 행위다.

‘기업인 유죄추정주의’를 바탕으로 기업활동을 단죄하려면 헌법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경제계의 호소대로 지금이라도 포퓰리즘에 기댄 과도한 반기업법 제정을 멈춰야 한다.

yooby@hanku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