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까지 백신 확보 강조한 아베…한·일 격차 키운 리더십 [여기는 논설실]

"백신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수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되는 것은 국내외산을 가리지 않고 공급 계약 체결을 순차적으로 진행시키겠다.(ワクチンについては、来年前半までに、全国民に提供できる数量を確保することを目指し、安全性、有効性が認められるものは、国内産、国外産の別を問わず、供給契約の締結を順次進めてまいります.)"(8월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전 일본 총리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본부 발언)

한국과 일본 간 코로나 백신 확보 격차가 접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내년 2월부터 전 국민 무료 백신 접종이 '가시권'에 들어선 상황입니다. 미국 화이자(6000만명 분)·모더나(2500만명 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6000만명 분)를 비롯해 노바벡스 등 주요 백신 개발사들로부터 전 국민(1억2647만 명)이 다 맞고도 남는 물량(7700만 병, 3300만명 분)을 확보했습니다.반면 한국 정부는 4400만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미 FDA로부터 정식 사용승인이 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외엔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한 상태이고, 접종 시기도 사실상 내년 3분기 이후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일본이 전 국민이 무료로 백신을 접종해 '집단 면역'이 생긴 이후에도 한국은 여전히 예방주사를 구경도 못 할 가능성이 커진 것입니다.

한때 한국에선 일본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방역 당국이 팩스로 관련 자료를 집계하느라 환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며 비웃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일본의 부정확한 코로나 관련 통계를 믿을 수 없다며 실제 코로나 감염자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도 횡횡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결점 제로(0)'의 방역 최선진국은 아니었지만, 사망자가 급증한 것도 아니고, 의료 체계도 아직까진 견실하게 유지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코로나 백신의 안정적인 확보로 조만간 터널을 벗어날 희망도 품게 됐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한·일의 모습이 뒤바뀌고, 코로나 대처에 대한 상황이 역전된 것일까요. 답답한 마음에 일본 측 과거 뉴스를 검색하다 눈에 띄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잘 아시다시피 한국에선 어제 청와대가 "대통령께서 4월부터 코로나 백신 확보를 강조했다"며 12차례에 달하는 문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백신 관련 메시지를 정리해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반면 일본에선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상세한 후생노동성이나 내각관방 등 일본 정부 각 부처가 공식 코로나 백신 확보 계획을 준비한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관료들은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총리 주제로 구체적으로 백신 확보에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사실도 기사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아베 신조(安倍晋三)전 총리의 지난 8월 28일 사퇴 표명 기자회견입니다. 이날 한국 언론에선 건강상의 이유를 든 아베 총리의 사의 표명에 관심을 뒀지만 이날 연설에는 코로나 대책과 관련한 내용이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오늘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의 도래를 바라보며 향후 코로나 대책을 결정했다"며 검사능력 확충, 중증화 가능성이 큰 고령환자 대책, 의료기관 부담 경감 대책, 관련 예산 확보 등을 언급했습니다.

연설에 앞서 열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본부에선 "2021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수량의 백신을 확보하겠다"며 "국내외산을 가리지 않고 공급 계약 체결을 순차적으로 진행시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연설 직전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선 코로나 백신 확보를 위해 예비비를 활용키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이와 관련, 당시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는 이미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에서 2021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 분의 백신 공급을 합의했다"(니혼게이자이신문)고 부연 보도했습니다. 백신으로 건강상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제약회사가 아니라 국가가 배상한다는 방을 마련했다는 점도 전했습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신정권 출범 직전인 9월 8일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확보를 위한 예비비 6714억엔(약 7조2000억원)의 지출을 의결했습니다.

스가 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일사불란하게 백신 확보 노력에 집중한 모습이었습니다. 후생노동성은 12월 10일에 개최한 후생과학 심의 회의에서 백신 접종과 유통의 큰 틀을 마련했고, 백신 보관에 필요한 초저온 냉동고 1만500대(영하 70도 보관 3000대, 영화 20도 보관 7500대 등)를 연내 확보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화이자 백신이 영하 70도, 모더나 백신이 영하 20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백신 배송과 사용에 필요한 특수 바늘과 주사기도 국가에서 대량으로 조달하고 제공키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역별로 백신 유통을 담당할 의약품 도매상을 결정하고 유통을 원활화하는 방안도 준비했습니다.

이어 3차 보정예산(5700억엔)과 함께 대책비를 확보해 내년도 백신 접종 체제를 갖추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재원을 바탕으로 의료기관 종사자는 2월 하순에, 3000만~4000만 명에 달하는 고령자는 3월 하순부터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일본 국내 백신 개발을 위해서도 1600억 엔을 할당했습니다.일본에서 물러나는 총리는 마지막 날까지 백신 확보에 집중했고,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관료조직은 일사불란하고 체계적으로 백신 확보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지난 4월부터 대통령이 백신 확보를 지시했다는 '공허한 발언'만 내놓는 한국 정부와 큰 대조를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일간의 코로나 '백신 격차'는 결국 리더십의 차이, 철저하게 준비하고 행동하는 관료조직의 질의 차이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버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레이와3년(2021년)상반기까지 전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수량의 백신 확보를 목표로 한다"는 올 9월25일에 발표된 내각관방과 후생노동성의 '백신 접종 중간보고'서류에서 이미 한·일 양국 간 백신 격차는 예고됐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