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접어야할 판"…집값 잡겠다던 정부, 애꿎은 서민만 잡았다
입력
수정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급전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회사 사우회 대출과 저축은행을 알아보고 있고 여차하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생각이다. 은행에서 신용대출 만기 한 달을 앞두고 원금 1억3000만원 중 3000만원을 갚거나, 타행 신용대출을 상환하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갑자기 어디서 돈을 마련하냐”고 항의했지만 “정부 규제가 강화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은행들이 ‘개인 신용대출 전면 중단’ 등의 고강도 조치를 취하면서 ‘대출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고소득층의 자금 줄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가 직장인과 소상공인 등 일반 서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부 조치가 애꿎은 서민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다.
소상공인은 직장인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매출 사정이 나빠진 사업자들은 은행행으로부터 일부 상환을 요구하거나, 추가 대출을 거절당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을 끊지 말라고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연기하거나 돈을 더 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통해 각종 보증서 대출을 받았다. 20조원 넘게 집행된 1, 2차 코로나19 대출은 △신청부터 집행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개인별 한도가 턱없이 적고 △신용도가 낮으면 거절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 동앗줄’이었던 신용대출이 조여지자 소상공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모씨는 “소상공인 대출과 신용대출을 이미 다 끌어썼다”며 “정책대출이 또 나오지 않으면 당장 가게를 접어야할 판”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대율 규제를 풀더라도 가계대출에 여유가 생길 진 미지수다. 새로운 자본건전성 자본 규제인 바젤Ⅲ를 조기 도입하면서 받은 ‘숙제’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바젤Ⅲ를 도입한 은행들에 기업대출 비중을 50~60%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했고, 최근 가계대출을 더 줄이지(기업대출 비중 확대) 못하면 바젤Ⅲ 도입을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을 주요 은행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바젤Ⅲ를 도입한 은행들이 자본 건전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지만, 중도에 취소되면 안하느니만 못해진다”며 “국제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전전긍긍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내년에도 서민들의 대출 여건은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대한) 대출 총량 규제가 당분간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과 차주별 상환여력, 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각종 대출 통제 조치들이 서민 금융의 피를 마르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현아/정소람/김대훈 기자 5hyun@hankyung.com
은행들이 ‘개인 신용대출 전면 중단’ 등의 고강도 조치를 취하면서 ‘대출 절벽’에 내몰린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고소득층의 자금 줄을 차단하려는 정부의 대출 총량 규제가 직장인과 소상공인 등 일반 서민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부 조치가 애꿎은 서민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인, 소상공인도 ‘신용대출 대란’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의 원금 일부를 상환해야 만기를 연장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직장인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은행과 정부를 성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원금 30%를 갚으라고 요구받았다’거나, ‘6개월만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는 극단적인 사례도 많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정부가 내년에 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며 “평소 가깝던 고객에게는 뚫어둔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가 줄어들 수 있으니 절반을 꺼내서 다른 통장에 넣어두거나 타행 마이너스 통장을 뚫어보라고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소상공인은 직장인보다 더 큰 어려움에 처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매출 사정이 나빠진 사업자들은 은행행으로부터 일부 상환을 요구하거나, 추가 대출을 거절당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소상공인 대출을 끊지 말라고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연기하거나 돈을 더 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통해 각종 보증서 대출을 받았다. 20조원 넘게 집행된 1, 2차 코로나19 대출은 △신청부터 집행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개인별 한도가 턱없이 적고 △신용도가 낮으면 거절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가운데 ‘마지막 동앗줄’이었던 신용대출이 조여지자 소상공인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 영등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임모씨는 “소상공인 대출과 신용대출을 이미 다 끌어썼다”며 “정책대출이 또 나오지 않으면 당장 가게를 접어야할 판”이라고 했다.
은행은 ‘어쩔 수 없다’ 변명만
은행들은 겹겹이 조여오는 정부의 대출 규제 때문에 ‘곳간’을 더 열지 못한다고 항변한다. 금융당국은 은행별로 1억원 이상의 고액 신용대출 건수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신용대출 만기는 대부분이 1년이다. 연초에 받았던 신용대출의 만기가 내년초에 돌아오기 시작하면 한도축소 등으로 곤란을 겪는 사람이 대거 쏟아질 전망이다. 올해 초 도입된 신(新) 예대율 규제와 자본적정성 규제인 바젤Ⅲ 등도 은행의 가계대출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은행들은 매달 평균 잔액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을 100% 내로 유지해야한다. 가계대출에는 가중치 115%가 적용돼 비중을 줄이는 게 불가피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초기인 지난 4월 정부가 자금 공급 확대 차원에서 예대율 규제를 105%로 완화돼 대출에 다소 여유가 있었으나 지금은 한도가 꽉 차 있다”며 “감독당국에서 예대율 한도를 더 풀어야 대출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그러나 예대율 규제를 풀더라도 가계대출에 여유가 생길 진 미지수다. 새로운 자본건전성 자본 규제인 바젤Ⅲ를 조기 도입하면서 받은 ‘숙제’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바젤Ⅲ를 도입한 은행들에 기업대출 비중을 50~60%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했고, 최근 가계대출을 더 줄이지(기업대출 비중 확대) 못하면 바젤Ⅲ 도입을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을 주요 은행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바젤Ⅲ를 도입한 은행들이 자본 건전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었지만, 중도에 취소되면 안하느니만 못해진다”며 “국제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전전긍긍하는 처지”라고 전했다.
내년에도 서민들의 대출 여건은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대한) 대출 총량 규제가 당분간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과 차주별 상환여력, 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각종 대출 통제 조치들이 서민 금융의 피를 마르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현아/정소람/김대훈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