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화형식·초격차…삼성과 동행한 대덕전자 매출 121배↑"

김영재 대덕전자 지주사 사장 '삼성전자와 함께한 40년'

비메모리 반도체 핵심부품 생산
위기때 머리 맞대고 해결책 찾아
삼성 협력사란 말에 대출 받기도

'삼성 협력사' 타이틀은 훈장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삼성전자 휴대폰뿐만 아니라 대덕전자가 만든 모바일 기판도 함께 불탔습니다.”

대덕전자 지주사인 (주)대덕의 김영재 사장(사진)은 삼성전자가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폰 15만 대를 태웠던 화형식이 회사가 탈바꿈하는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폰 안에 있던 기판까지 불타는 모습에 절치부심해 품질과 설계·검증 기준을 확 끌어올렸다”며 “당시 위기가 오히려 삼성전자와 대덕에 모두 도약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위기마다 ‘품질·기술’ 절치부심

대덕전자는 전자제품의 ‘신경망’이라 불리는 기판소재 전문 회사다. 지난해 기준 매출의 99%가 기판에서 나왔다. 지난 5월 사업회사인 대덕전자와 투자회사인 (주)대덕으로 인적 분할해 지주사 체제로 거듭났다. 대덕전자 창업자인 고(故) 김정식 회장의 차남인 김 사장은 2012년부터 삼성전자 우수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위기마다 삼성전자와 협력사가 모여 해결책을 내기 위해 매진했던 것이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그가 입사한 1983년만 해도 대덕전자는 TV용 기판을 제조하는 회사였다. 김 사장은 “당시 대덕전자의 PCB 회로폭은 지금보다 30배 두꺼웠다”며 “삼성이 TV에서 반도체, 스마트폰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매출과 기술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삼성 거래 초기인 1980년 88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조722억원으로 121배 뛰었다. 280명에 불과했던 종업원도 3500명으로 12배 늘었다.
대덕전자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오른 시기는 2005년부터다. 삼성전자가 일본의 소니를 넘어서면서 대덕전자에도 전환점이 됐다. 그는 “삼성 ‘초격차’ 전략은 대덕전자에도 유효했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인쇄회로 미세화 기술을 개발하고, 반도체 적층기술을 기판에 도입하면서 기술 도약을 이뤄냈다는 설명이다.

‘삼성 협력사’는 보증수표

‘삼성의 오래된 협력사’라는 훈장은 해외에 진출할 때도 보증수표가 됐다. 그는 “일본 업체들이 주도권을 잡아온 세계 기판 시장에서 삼성 협력사라는 타이틀 자체가 경쟁력”이라며 “은행에서 ‘삼성 협력사’라는 말에 대출 승인이 난 경우도 있다”고 떠올렸다. 지난 3분기 기준 대덕전자 매출 중 해외 비중은 43%에 달한다. 최근 북미 고객사와의 수주 계약도 진행 중이다.

김 사장은 “향후 3~4년이 대덕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대덕전자는 플립칩 내장기판(FC-BGA) 양산 물량을 당초 계획보다 늘리기로 했다. 반도체칩과 메인회로 간 신호를 전달하는 FC-BGA는 전기자동차 중앙처리장치(CPU) 등에 쓰이는 핵심 부품이다. 세계에서 10개사밖에 제조하지 못할 정도로 고부가 제품이다. 양산이 본격화하면 1500억~2000억원의 추가 매출이 기대된다. 그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에 발맞춰 FC-BGA 분야를 준비해왔다”며 “AI·데이터센터 관련 수주를 앞두고 있고, 5세대(5G) 통신과 차세대 전장시장도 겨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