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지자체장은 슬그머니 빼고…CEO·오너만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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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 국회 제출정부가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처벌 조항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최소 2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도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과거 법위반 사례가 있으면 책임 유무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없앴고, 50~10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2년 유예하기로 했다. 경제계에선 “위헌 시비가 거론된 조항만 미세 조정했을 뿐 기업들이 우려하는 과도한 처벌 조항은 실제적으로 바뀐 게 없다”(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고 반발했다.
29일 법사위 소위 심사
2년 이상 징역형 그대로 유지
사망 외 처벌은 오히려 강화
처벌대상 이사는 안전·보건 한정
50~100인 미만 中企 2년 유예
경제계 "위헌논란 조항 찔끔 손봐"
與, 정부 부처 의견 취합
28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부처 의견을 취합해 이런 내용의 수정안을 잠정 마련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근로자가 한 명 이상 사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두 명 이상 나타나거나 △부상자 또는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 경영 책임자, 공무원 등을 광범위하게 형사 처벌하는 내용의 법이다. 형벌이 지나치게 과도하고 법 조문이 모호해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여당에서는 박주민·박범계 의원, 야당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이 법안을 냈다.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법제처 등 관계 부처 의견을 종합해 사실상 정부 수정안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수정안은 처벌 대상 경영 책임자의 범위에 법인 대표를 그대로 포함시켰다. 이사의 경우 안전·보건 담당 이사로 범위를 제한했다. “이사 범위에사외이사 등 기업 경영을 주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고용부 의견이 반영됐다. 처벌 수준은 벌금의 경우 5억원 이상에서 5000만~10억원 이하로 낮췄지만, 2년 이상 징역은 그대로 유지했다.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장(長)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인허가권 또는 감독권을 가진 공무원을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포함됐다.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사고 이전 5년간 안전의무를 3회 이상 위반했을 때 중대재해의 책임이 있다고 본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삭제하기로 했다. 법무부가 “형사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고,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엄격한 증거에 의하므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안전의무의 경우 △안전보건경영체계 수립 △위험 설비나 화학물질 취급, 추락·붕괴 사고 등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 수립 △재해 원인 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당초 초안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만 법 시행을 4년 미루기로 했지만, 50~100인 미만 사업장도 2년 유예했다. 민주당은 29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를 열고 이런 잠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정부안에 대해 정의당과 여당 강경파는 오히려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법취지가 훼손된다”며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노동계 측 의견이 다수 반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여당은 다음달 8일 임시국회 종료 전까지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경제계 호소 외면”
경제계는 “법 제정을 멈춰달라”는 호소를 외면한 채 여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번 수정안 내용도 기업 입장에서 크게 나아진 게 없고, 일부 항목의 처벌 조항은 오히려 강해졌다고 지적했다.사업주에 대한 징역형에 ‘상한’이 아니라 ‘하한’이 유지된 게 대표적이다. 50~60대 중소기업 사장은 단 한 번의 사망사고로 징역 10년에서 20년 이상을 받으면 사업을 접고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된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법리적으로 과실범에 징역형의 하한을 두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로자 사망을 제외한 중대재해의 경우 3년 이하에서 7년 이하로 오히려 처벌이 강화됐다.
중소기업계가 수정을 요구한 안전 관련 의무와 책임 조항도 바뀐 게 거의 없다는 시각이다. 산업안전 전문가인 이상철 태평양 변호사는 “세부적인 조치 의무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두도록 했지만,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준과 비슷해질 것으로 보여 중복 규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우택 본부장 역시 “책임 조항이 여전히 모호하고 포괄적”이라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규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99%의 중소기업은 오너가 곧 대표”라며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사고 발생 시 바로 부도를 내야 할 정도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우려했다.
조미현/좌동욱/안대규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