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서 친딸 살해 혐의 아빠…1심 22년→항소심 무죄 '반전'

재판부 "미끄러져 사망했을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던 40대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은 범행 동기가 없으며 친딸이 욕조에서 놀던 중 미끄러져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는 최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41)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22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중국에 살던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호텔 욕실에서 딸 B(7)양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7년 5월 이혼한 뒤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그는 이혼 후에도 전처와 함께 사는 B양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단둘이 여러 차례 해외여행도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A씨의 여자친구 C씨는 B양을 '마귀'라고 부를 정도로 미워했고 A씨가 딸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자 이를 원망하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검찰은 이 같은 정황으로 A씨가 C씨를 위해 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함께 한국에 들어와 호텔에서 범행한 것으로 보고 A씨를 기소했다. 실제로 수사 과정에서 A씨와 C씨는 범행을 공모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시 A씨는 객실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고 로비에서 술을 마신 뒤 객실로 돌아가 호텔 안내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딸이 욕실에 쓰러져 있다"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폐쇄회로(CC)TV 영상분석 결과 A씨 외 해당 객실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

1심은 "A씨는 B양을 극도로 증오한다는 걸 알면서도 C씨와 상당기간 연인관계를 지속해왔다"며 "A씨는 C씨에게 '오늘 밤 필히 성공한다'는 문자를 발송했는데 C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동조하는 척했다는 변소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이어 "A씨가 C씨와 B양을 살해할 것을 공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A씨가 B양과 방에 들어갔다가 홀로 나오고 다시 들어갈 때까지 방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망 당시 함께 있던 유일한 사람인 A씨가 손으로 B양 목을 조르면서 욕조 물 안으로 눌러 익사 및 경부압박 질식사로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공소사실을 유죄 판단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범행 동기가 없는 점, 사건 직후 현장에서 A씨의 모습이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인 점, B양이 욕조에서 미끄러져 목이 접히며 질식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 판결했다.재판부는 "전처도 'A씨가 절대로 죽였을 리 없다'고 하고 여행 당시 촬영한 사진을 봐도 여느 부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며 "A씨가 B양을 살해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찾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C씨에게 '호텔 도착 전 필히 성공한다' 등 메시지를 보낸 직후 '우리 이런 얘기하지 말자' 등 메시지를 발송했다"며 "C씨를 달래주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동조하는 척했다는 A씨의 주장에 부합하는 정황"이라고 말했다.

또 "구급대원은 '당시 A씨가 크게 울며 통곡했고 통상 사고를 당한 딸을 봤을 때 부모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진술했다"며 "현장에서 A씨의 모습은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밝혔다.아울러 "B양이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지면서 욕조 물에 잠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런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단순한 관념적 의심이나 추상적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에 그친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