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규 한국부동산원 원장, 조직 180도 바꾼 첫 내부출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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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1986년 1월 한 청년이 황하주 당시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원장을 찾아갔다. 낯선 청년의 방문에 의아해하던 원장에게 그는 “감정원에 꼭 입사하고 싶다. 수년간 공개채용이 없었는데 올해 꼭 채용 문을 열어달라”고 강단 있게 요청했다. 그 청년은 그해 공채에 지원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30여 년 후 부동산원 수장에 오른 김학규 원장의 이야기다.
부동산 '4차 산업혁명' 선두에 서다
'현장의 산증인' 조직을 바꾸다
조직의 존재 이유 '국민에 봉사'
부동산원 최초의 내부 출신 원장인 그는 입사 일화에서 드러나듯 조직에 대한 열정과 애사심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취임 이후 부동산원 연 매출은 이전보다 평균 21% 늘었다. 매년 역대 최대치를 새로 쓰고 있다. 경영평가 A등급 달성, 감사원장 표창 수상, 행정안전부 행정정보 공동활용 우수사례 선정 등의 성과도 거뒀다. 올해 설립 51년 만에 사명을 ‘한국감정원’에서 ‘한국부동산원’으로 바꾸고 제2의 도약에 나섰다.
30년 현장 전문가 “소통·협력 중시”
김 원장은 ‘부동산원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불린다. 30년 넘게 경영관리실장, 기획조정실장, 부동산연구원장, 혁신경영본부장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며 현장 경력을 쌓았다.김 원장은 “혁신경영본부장 재직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부동산원은 2015년 ‘감정평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그동안 수행해온 연 400억원 규모의 감정평가 업무를 민간에 넘겨야 했다. 그 대신 감정평가 심판, 부동산 공시, 통계, 시장 관리 등 공적 기능을 맡게 됐다. 당시 내부 반발과 외부 압박으로 진통이 컸다. 그야말로 과도기적 혼란의 시기였다. 김 원장은 민간 감정평가사들과의 협의를 이끄는 실무책임자였다. 업무 이양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중책을 맡은 터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양측의 갈등이 깊었지만 대화와 소통으로 ‘감정평가 기능조정 대타협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담은 ‘한국감정원법(현 한국부동산원법)’도 그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올해엔 주택 청약 관리 및 지원, 부동산 정보 제공 및 자문 등의 역할을 추가로 맡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지원하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 원장은 혁신경영본부장 시절 경험 덕분에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취임 후 현장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어 지사 및 실·처별 고충을 들었다. 그들이 현장에서 느낀 불합리한 부분을 즉시 개선토록 했다. 그가 공인중개사들과 비공식 간담회를 연 것도 “부동산 시장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선 현장과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ICT 기반 부동산 허브 기관”으로 변신
김 원장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섰다. 부동산원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파격적인 개편이었다. 그간 분리돼 있던 공시와 통계 업무를 공시·통계본부로 통합 이관했다. 또 전산 업무 고도화를 위해 정보통신기술(ICT)추진실을 확대했다. 부동산연구원 내에는 빅데이터연구부를 신설했다.특히 김 원장은 지리정보시스템(GIS)과 빅데이터 등 첨단 ICT 기술을 도입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부동산원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시장의 싱크탱크로 한 단계 도약할 때”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부동산산업은 로테크(low-tech) 산업으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해 선진화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부동산산업도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발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원이 먼저 앞장서자”고 거듭 강조했다.여러 방안 중 하나가 사내벤처팀 육성이었다. 부동산원은 과거 공공기관 최초로 사내벤처 ‘리파인’을 분사시켜 중견기업으로 키운 사례가 있었다. 김 원장은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사내벤처팀을 지원했다. 그 성과로 지난 1월 사내벤처팀 ‘KAB벤처스’는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가상현실(VR) 영상 기술 기반의 한국형 리얼 스마트시티 플랫폼 ‘윈도우뷰’를 선보였다. 최근엔 사내벤처 ‘아이쿠’가 개발한 ‘부동산 거래위험 자동분석 시스템’이 특허를 받았다. 이 시스템은 부동산 사기 등 위험 요소를 사전에 탐색해 솔루션까지 제공한다.
‘K공시제도’의 위상도 높아졌다는 평이다. 부동산원의 부동산 공시 제도와 시스템은 베트남, 탄자니아 등의 개발도상국에서 혁신 모델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 원장은 “해외 공시 제도를 비교 분석해 세계시장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라며 “앞으로도 부동산산업 발전과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에 봉사하는 가족친화적 공공기관
김 원장의 인생관이자 경영철학은 ‘극진실천(極盡實踐)’이다. 전력을 다해 실천한다는 뜻이다. 김 원장과 수십 년간 함께 일한 직원들은 그의 성실함과 한결같은 태도에 놀란다. 그는 20년째 매일 10㎞씩 달리고 있는 ‘마라톤 마니아’다. 일과 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은 후 주요 기사를 스크랩한다. 수십 년간 다져온 생활습관이다.평소 후배들에게 “공공기관의 정체성은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 편의성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한결같이 강조한다. 2007년 모두가 기피하는 보상사업처장에 자원한 것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보상사업처는 업무가 많고 악성 민원인을 상대해야 해 부동산원 내부에서 가장 꺼리는 궂은일을 하는 부서로 통한다.김 원장이 6남매의 아버지로서 얻은 개인적 경험은 부동산원이 가족친화적 공공기관으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경영관리실장을 지낸 2008년 공공기관 중 선도적으로 시간선택제, 직장 어린이집 등을 도입했다. 2012년 기획본부장을 맡은 뒤엔 ‘마더프로젝트(마음을 더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어 다자녀 장학금, 유연근무제 등 출산과 양육에 친화적인 제도를 마련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제1회 인구의 날’ 행사에서 국민포장을 받았다.
김 원장은 매년 신입 직원들의 부모님께 손편지와 꽃다발을 전하며 가족친화적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 김학규 원장은1957년 경북 문경 출생
서울 대성고 졸업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1987년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 입사
2009년 한국부동산원 기획조정실장
2014년 한국부동산원 혁신경영본부장
2018년 한국부동산원장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