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원칙 못지킨 의사국시…시험 집단거부 또 나오면 어쩌나

복지부, 시험거부 의대생들 구제…"국민 생명·안전 위한 대책"
"특별 조치로, 다시는 같은 기회 안 줘"…의대생 사과 표명없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이유로 의사 국가시험 거부자들을 위한 별도의 시험 기회를 부여키로 하면서 형평성과 공정성 원칙을 저버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누적 확진자가 6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도 900명이나 나오는 상황에서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정부가 그동안 반복적으로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 '국민적 동의' 등을 이유로 추가 시험 불가 기조를 고수하다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꾼 터여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지난 9월 의사 면허에 필수적인 국가고시를 집단으로 거부한 의대생 2천700여명을 단체로 구제하는 별도의 시험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내년 하반기에 예정된 시험을 상·하반기로 나눠 2차례로 실시하고, 올해 시험 거부자들은 1월 말 상반기 시험에 응시토록 조치한 것이다.사실상 시험 기회를 추가로 준 셈이다.

복지부는 "국민들께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집단행동을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국민 건강과 환자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적 소명"이라면서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의대생 2천700명의 집단 시험 거부로 취약지 필수 의료를 담당할 공중보건의가 380명이나 부족해지고,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악화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의사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하지만 이번 결정은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어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 시험이 국가 주관 시험이라는 점에서 '원칙 훼손' 논란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교원임용 국가시험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응시 기회조차 아예 주지 않았고, 소관 부처인 교육부는 재시험도 추진하지 않았다.복지부도 그간 이런 논란 가능성을 의식해 의료계의 지속적인 추가 기회 요구에도 '국민적 공감대 없이 기회를 부여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다 이날 갑자기 국민적 공감대를 거론했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진 피로도가 날로 심화되고 있고 필수의료인력 확대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어 국민 공감대는 어느 정도 인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대생들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주기 위해 관계 법령까지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시험을 90일 이전에 공고하도록 한 현행 의료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 추가 기회를 얻은 의대생들이 공중보건의가 될 수 있도록 병무 관련 규정도 손봐야 한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채점위원들도 다시 불러 모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인 의대생들은 공식적으로 사과의 뜻을 표명한 적이 없다.

대학병원장들이 대리로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의료계가 한목소리로 재응시 기회를 요구했지만 정작 의대생들은 사회적 논란과 재응시에 들어가는 국가 행정력 등에 대해 한 번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대국민 사과를 조건으로 시험을 허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정부는 사과를 요구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응시자에 대해 정부가 별도의 사과 요구를 할 계획은 없다"면서 "당사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응시 입장을 밝혔고 그런 내용을 갖고 실기시험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앞서 지난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추가 시험 관련 질의에 "여전히 반대가 많아 국시 문제는 국회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구제책 발표에 앞서 국회와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제 그만 해결하라'는 윗선의 압박으로 인해 복지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았다는 얘기도 나온다.복지부는 "이번 의사국시 시행 계획은 의료계와 협력해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특별 조치"라면서 "앞으로 단체로 시험을 거부할 경우 결코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