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한국인의 '본모습' 찾아야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65) 한국인은 어떤 정체성을 가졌나

기원전 10세기 전후 생성된 우리 민족의 정체성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쳐 왜곡된 시각에 발목
다음 세대 위해 우리의 본모습 찾아야
백두산 천지.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2021년 새해가 시작됐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이 ‘터’에서 새해를 맞이한 ‘나’ 또는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가 태어나기 전 새해를 맞이했던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그들의 정체성이 궁금하고, 삶과 역사를 알고 싶다.

우리는 ‘민족(民族)’이란 근대에 도입된 용어의 개념과 역할을 앞세우며 치열한 독립전쟁을 벌였다. 반면 남북이 분열됐고, 민족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2000년 무렵부터는 단일민족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며 민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대두됐다. 여기에는 ‘세계화’와 ‘탈민족주의’란 세계사적 흐름과 중화민족주의의 산물인 ‘동북공정’이 등장한데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또한 이는 우리 역사에 대한 오해와 외부에서 비롯된 단어인 ‘민족’의 역사성, 정치성을 간과한 결과이다(윤명철, 《역사전쟁》) .
우리의 정체성은 청동기 시대가 성숙할 무렵인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 ‘원형’이 생성됐다. 이후 시대의 변화, 공간의 이동, 외부의 강력한 충격과 내부의 큰 사건들로 인해 약간의 ‘변형’들이 발생했다. 그러므로 혈연공동체, 언어공동체, 생활공동체였고, 수백년씩 유지한 정치공동체가 계승된 드문 집단이었다. 단일혈족은 아니었지만 내부 동질성의 비율이 높았던 역사공동체로 단일민족이었다. 긴 역사를 가진 우리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이해하려면 1단계로 원형을 파악하고, 다음 단계로 해당 시대의 변형을 찾아야 한다.

우선 세계사적으로, 특히 한민족의 역사 중 불행이 닥치는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기록한 내용을 들여다보자. 20여 권의 책을 분석한 결과,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가난하고 더럽다’, ‘남자들은 게으르고, 여성차별이 심하다’, ‘미신에 사로잡혔다’는 점이다. 또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해 백성들을 쥐어짠다’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반면 신체가 크고, 잘 생겼고, 기품이 흐르며, 친절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머리가 좋고 명민해서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평가한 점이다. 물론 이는 중국, 일본 나아가서는 다른 아시아인들과 비교해서이다. (김학준, 《서양인들이 관찰한 후기조선》) 이는 ‘외부인’ 또는 ‘방문자’의 관찰기이므로 자의적이고, 판단의 척도가 다르다는 한계는 있으나 객관적이고, 상대비교한 평가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일본은 조선인이 게으르고 사대적이며 의타성이 강하며, 당파성이 강해 분열됐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세끼노 다다시나 야나기 무네요시처럼 자연은 물론 역사에 대한 무지와 경멸로 문화와 미의식, 민족성까지 왜곡한 경우도 많았다. 조선사회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영토는 반도로 고착되고, 농경문화에만 집착해 역동성과 개방성이 약화했다. 문화는 폐쇄성을 띄게 됐다. 문제는 말기인 구한말을 바탕으로 상황과 평가들이 현재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그렇다면 고유성과 원핵을 유지한 고대인들, 특히 고구려인들을 평가한 내용이 궁금하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부여 사람들은 횐빛을 숭상한다고 기록했다. 또 고구려인을 ‘교만하고 방자해졌으며, 움직이고 걷은 것이 다 달리는 것 같다.고 묘사했다. 《후한서》 또한 성질이 흉악하고 급하며 기력이 있어 전투를 익혀 약탈을 좋아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혹평들은 역설적으로 고구려인들의 용기, 중국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의지, 정적이 아닌 동적인 사람들의 정체성을 증언한다.

그런데 타자의 시선으로 관찰된 현상과 평가로는 본질과 내적논리를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 찾을까? 밝혀진 역사상과 문화 현상을 질료로 삼아 과학과 다양한 이론들을 활용하면 원형 뿐 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형된 정체성도 규명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정체성의 원형을 몇 가지로 유형화시켰고, 그 중에 현재 한국사회에 부족하고 절실한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이상향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강한 목적의식이다. 우리 터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없고, 기후가 온화하며, 사계절이 분명해서 식물성장과 동물들의 안주에 바람직한 생태 환경이다. 따라서 지경학적으로 자급자족과 소박한 생활이 가능하다. 외적이 대규모로 침입하기 힘든 지리와 쉽게 점령할 수 없는 지형을 갖춘 탁월한 지정학적 환경이다. 단 한 번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뿐이다. 또한 해가 처음 뜨는 동쪽세계로 인식돼 해를 추구하고 하늘을 숭모하는 신앙을 갖게 했다. 한국, 조선, 부여, 신라 등의 나라 이름과 왕명들은 ‘해’와 ‘밝음’을 뜻하고 백두산, 태백산, 한강 같은 지명,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같은 종교의례 역시 ‘해’와 연관이 깊다.
요녕성 해성시 적목 소재 고인돌.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두 번째는 탐험 정신과 역동성 등이 필요하다. 동쪽 이상향의 정보를 획득한 일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사막, 대삼림, 강과 바다를 건너 8개 이상의 길을 이용해 수세대 동안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질병과 전쟁, 기아와 내부갈등 등으로 희생당하면서도 중도 포기를 거부한 채 목적지에 도착했고, 한민족의 구성원으로 변신했다. 불가능한 도전을 성취한 탐험정신은 ‘흥’, ‘신바람’, ‘풍류’등으로 개회됐고, 극한 상황을 참고 돌파하는 집요함과 용기는 ‘은근과 ‘끈기’로 변형됐다. 셋째는 조화를 지향하고 공생을 지향하는 정신이다. 일본인들은 당쟁 등을 침소봉대해 '당파성’을 타고난 민족성이란 궤변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실제 민족 내부에 분열과 전쟁이 발생했지만 원형은 통일지향적이었고, 모든 일을 조화와 협력의 관점에서 보는 문화였다. 원조선 붕괴 이후 재건에 성공한 바 있고, 이후 국가들은 조선 계승성을 표방하면서 통일을 실천했다. 외적의 침략이 빈번하고 강대국들과 대결할 수밖에 없는 고구려 등의 나라들에 단합과 통일은 생존의 문제였다. 또한 우리 터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문화가 모여드는 집결지이므로 차이를 해소하고 조화시키면서 문화갈등과 격차를 해소해야 했다. 생활 조건이 좋아 부유한 편이었고,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아담한 자연환경은 너그러운 인성과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아닌 공존과 상생을 하기 적합했다. 이렇게 역사적인 경험이나 목적, 지리적인 환경 등으로 보아 통일지향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은 사상적으로도 조화와 공존의 사상을 정립시켰다. 단군신화가 표방한 ‘3의 논리’, ‘홍익인간’, ‘풍류’, 원효의 ‘화쟁(和爭)사상’ 등은 조화의 논리이며 공생의 정신이다(윤명철 , 《우리민족 다시본다》).
알혼섬의 불한바위를 바라다보는 언덕의 세르게. 사진=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그러나 조선 500여 년, 일제 30여 년, 분단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원핵‘은 심하게 왜곡됐다.
그러나 절망적인 말기에도 서양인들이 간파할 정도로 보존한 ’원형‘의 편린들은 개화했다. 정체성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란 세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성공의 기본 동력이 됐다. 다만 높은 효율과 외적 성과를 위한 속도전과 편법 때문에 사회갈등이 심각해졌다. 또한 가치관의 질적인 저하가 비일상적인 정치현상 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란 전염병 사태로 심화됐다. 더구나 미·중 간 충돌, 북한의 위협으로 실질적인 안정의 위협도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란 거시적 안목에서 보면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도약의 계기도 될 수 있다.

또 다시 새해가 됐다. 해가 떠오르는 우리의 터는 민족에게 해맞이의 주역이란 숙명도 함께 줬다. 한동안 그 숙명을 거스른 상태로 그늘 속에서 헤맸지만, 이제는 원형의 상실과 복구를 반복하는 것을 넘어 정체성의 원핵을 발굴해야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새로운 상황과 주체에 적합한 논리와 행동양식, 전략을 추구하는 정체성을 찾고 키워야 한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