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도 세월호 유족 노숙농성…"대통령 말 한마디만"

혹한 추위 속 故 임경빈군 어머니 등 58일째 노숙 농성
"나는 추위를 질색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말 한마디 들으려고 여기 1년을 넘게 있었어요.

"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숙 농성을 하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도 2021년이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이곳에서 만난 고(故) 임경빈군의 어머니 전인숙씨는 1일 피켓 시위 416일째를 맞았다. 노숙 농성만 58일째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 따르면 임군은 참사 당일 오후 5시 24분 구조됐으나 근처 해경 헬기에 탑승하지 못해 배로 4시간 41분이 걸려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을 이어가는 이유를 묻자 전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 표명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얼마 전 활동기간이 연장된 사참위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옆에 있던 고 정동수군의 아버지 정성욱씨는 "사참위와 검찰 특별수사단도 있지만 해양경찰 외 군과 국가정보원은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나서서 관련 자료 모두를 제출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지난달 64만여건 분량의 세월호 관련 자료목록을 사참위가 볼 수 있게 했다. 특정 자료에 대해 직접 열람을 요청하면 국정원은 안보 등 비공개 사유로 자료를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차를 거쳐 허용할 방침이다.

그동안 확인이 어려웠던 국정원 자료를 비롯해 군 관련 자료나 대통령기록물 등 아직 살펴봐야 할 것이 많다는 게 유가족들의 입장이다.

정씨는 "침몰과 구조 실패 원인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며 "찾기 전에는 싸움을 끝낼 수 없다"고 했다.

농성장은 허허벌판인 광장에 있다.

전지 크기의 피켓을 여러 장 겹쳐 만든 외벽과 깔개·담요로 바닥을 만든 공간으로 네댓 사람이 들어가면 가득 찬다.

난로는커녕 눈·비나 추위를 막을 비닐도 갖다둘 수 없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지는 요즘 칼바람을 피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분수대 앞은 1인시위나 기자회견이 자주 열리는 곳이지만 엄연히 청와대의 일부로 노숙이나 천막 등 시설물 설치는 허용되지 않는다.

4교대로 24시간 주변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관들이 보고 있어 이곳을 돌아가며 지키는 유가족 5∼6명은 오후 10시가 돼야 침낭을 깔 수 있고,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엄마들은 피켓 칸막이 안에서, 아빠들은 바깥에서 잠을 청한다.

최근 분수대 앞에는 세월호 유가족 외에 스텔라데이지호 유가족,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부산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씨의 복직을 요구하는 김진숙희망버스기획단혹한 추위, 해고에 맞서 50일 넘게 투쟁 중인 코레일네트웍스 비정규직노조도 피켓을 둘러치고 있다.

전씨는 "주변 농성장에 농담 삼아 '내 노하우를 가져다 쓴 것'이라는 말도 한다"면서 "결국 또 해를 넘기게 됐지만, 올해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면 좋겠다. 대통령이 의지를 표명할 때까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