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퇴짜맞은 이낙연의 전 대통령 사면 카드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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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고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반성 전제”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 불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부터다. 당시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 선출을 위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황교안·오세훈 후보 모두 사면을 주장하며 정치권 이슈가 됐다. 당시엔 두 전직 대통령 모두 확정 판결을 받지 않아 사면 대상이 안되는 상태여서 이런 주장은 사면 필요성에 대한 여론 형성과 정치적 압박 성격이 짙었다.
두 전 대통령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 내세워
“대통령 짐 덜어주기 위해 이 대표가 총대 멨다”
“지지율 하락 탈피 위한 강성 친문·靑과 선 긋기”
다양한 분석 속 이 대표 지도력에 상처만 남겨
여권 인사 중 가장 먼저 사면 주장을 꺼낸 사람은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다. 지난해 5월 21일 의장 퇴임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지도자가 초장에 적폐 청산을 갖고 시작하는데 적폐 청산만 주장하면 정치 보복 연장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개혁 동력이 상실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감히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해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면을 의미하나”는 질문에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점이 됐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은 그러나 “(사면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문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데 아마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사면에 대해 언급한 것은 2019년 5월 9일 취임 2주년 기념 인터뷰에서다. 사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숨을 쉬면서 “제 전임자 분이라서 누구보다도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리라 생각한다”면서도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형이 확정되면 사면을 고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같은 해 10월엔 당시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가 문 대통령 모친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에게 “(박 전 대통령이) 몸이 좀 안 좋으시니 배려를 좀 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웃음으로 대답하셨다”고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약 한달 뒤 노영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사면은 언제나 대비는 해 둔다”며 “계기마다 혹시 필요성이라든지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면 그게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권 주요 관계자들이 언급해 온 사면의 세 가지 조건은 조건과 명분, 공감 등이다. 조건은 형 확정 판결이고, 명분은 국민통합이며 공감은 여론 즉, 국민의 뜻이다. 이 전 대통령은 형이 확정돼 특별 사면 대상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재상고심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고, 형이 확정되면 사면 대상이 된다. 조건은 갖춰지게 되는 셈이다. 국민통합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국민적 공감이다. 진영 간, 같은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그런 상황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면론을 꺼낸 것은 의외다. 그가 집권당 대표에 유력 대선 주자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정치인들에 비해 말의 무게감이 다르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며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당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심은 그가 갑작스럽게 사면 건의를 한 배경이다. 건의 형식이지만 자칫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고 압박을 준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청와대와 조율된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 결정으로 꺼낸 카드인지를 놓고 여권의 의견은 갈린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를 역임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표와 같이 신중한 사람이 청와대와 어느정도 교감을 갖지 않고 불쑥 사면론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전직 대통령 사면을 해결하지 않고 임기를 마치는 것은 부담일 것이다. 그렇더라고 촛불시위 대상이 됐던 전 대통령을 직접 사면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간 사면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고심의 흔적이 있다. 이 대표가 친문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 대통령의 심중을 읽고 짐을 진 것이다.” 대통령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심전심으로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언젠가는 판단하셔야 할 문제인데 짐을 덜어드리는 것도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해 이런 분석에 힘이 실린다. 사면론을 꺼내기 전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독대 회동을 가졌다는 점에서 사전 조율 또는 적어도 ‘이 대표 총대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청와대가 민감한 문제를 이 대표에게 떠넘기고 여론을 떠보려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이 대표가 청와대의 뜻과 관계 없이 순전히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위기다. 지난해 대표 경선 이전만 해도 여야 통틀어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확고하게 고수하면서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러나 각 언론사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이 대표의 지지율은 이재명 경기지사에 밀리고 윤석열 검찰총장과는 엎치락 뒤치락하는 형국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 직전부터 친문 지지를 끌어들이는 전략을 펴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9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이른바 ‘친문팬덤’에 대해 “강성 지지자는 긍정적 기능도 있을 것”이라며 “당에 에너지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옹호했다. 당 기반이 약한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이 대표로선 당의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친문 지지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이는 중도층 마음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가로 통하는 한 의원은 “이 대표가 지나치게 친문 눈치를 보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고 집권 여당 대표로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로선 위기 국면을 탈피할 필요가 있고, 사면 건의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는 것이 여당 일각의 주장이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형이 확정되면 사면 주장이 다시 불거질 것이고, 자신이 선제적으로 이 문제를 주도, ‘통합’이미지를 구축해 중도층 마음을 붙잡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 대표가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친문은 다른 주자로 눈길을 돌릴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더 이상 친문이라는 협소한 지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다. 역대 정권 임기말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레임덕 징후가 나타나면 여당에서 청와대와 선긋기와 대통령 공격에 나선 것과 같은 선상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사면론을 꺼낸 직후 강성 친문 의원들과 대통령 골수 지지층이 이 대표를 거세게 공격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당내 친문 세력이 건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본격 레임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임기가 아직 1년 4개월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분석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강성 친문의 이 대표 공격도 촛불 정권의 당위성을 알리려는 것일뿐 대통령의 뜻이 확인된다면 사태는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면 건의는 당내 반대파에 밀려 결과적으로 이 대표의 대선 가도에 큰 상처만 남긴 모양새가 됐다. 이 대표의 사면 건의 발언 이틀만에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박 전 대통령)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며 당원들 의사에 따르기로 했다. 대통령 반성을 사면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적절한 시기 사면 건의’발언에 대해 “국민 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건의를 ‘충정’이라고 했지만, 최고위에서 사실상 수용 불가로 정리한 것이다. 반성을 전제로 한 사면은 두 전직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어 문 대통령이 정리에 나서지 않는다면 사면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