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라이더를 위한 '공짜 복지'는 없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수정
배달 혹은 배송은 이제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가 됐다. 누구나 음식을 시켜 먹고, 온라인 쇼핑으로 구매한 물건들이 하루도 안 돼 문 앞에 쌓이는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음식 배달 시장을 약 15조원 규모로 키웠다. ‘온라인 식품’ 시장은 올해 40조원을 돌파했다.
일명 ‘라이더’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배달기사들이 많아진 것도 배달 전성 시대의 단면이다. ‘부릉’이란 브랜드를 갖고 있는 종합 디지털 물류 기업인 매쉬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있는 라이더만 약 4만7000명이다. 정확한 통계가 없긴 하지만, 대략 업계에선 전국에 20만명 가량이 오토바이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량을 운행하는 전국의 택배 기사 수가 5만4000명 규모(한국통합물류협회 2020년 6월 집계 기준)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이더 시장의 팽창을 가늠해볼 수 있다. 라이더의 증가로 인한 변화는 우리 일상 속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빠른 배달이 대표적이다. 롯데마트는 물류 스타트업과 제휴해 점포에서 일정 반경에 있는 소비자에게 온라인 주문 후 1~2시간 내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실험 중이다. 평소 먹고 싶던 유명 맛집의 음식도 배달로 안방에서 즐길 수 있다. 쿠팡이츠는 ‘1인 1배달’을 내세워 자존심 강한 맛집들을 배달 시장으로 끌어들였는데 이를 가능케 한 건 라이더들이다. 동대문 패션 스타트업인 브랜디도 당일 배송을 내걸고 오토바이 물류를 이용하고 있다.
라이더 시장은 ‘코로나 시대’에 실업 대란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들 퇴교 길이면 노란색 봉고차를 몰고 와 왁자지껄 말썽꾸러기들을 예의바른 태권도맨으로 변신시켜주던 관장님은 요즘 ‘알바 라이더’로 변신했다. 라이더는 중고 마켓에서 오토바이 하나쯤 구할 여력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대표적인 임시 직업 중 하나다. 좀 거창한 말로 ‘긱(gig) 이코노미’의 대표 사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택배 배달이 직장을 잃고, 신용불량자로 추락한 우리의 아빠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듯이 요즘은 그 역할을 오토바이 배달업이 맡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커지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라이더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만들겠다고 밝힌 플랫폼노동자보호법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업체가 제공하는 업무로 돈을 버는 이른바 특수고용직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20만 라이더’가 신설 법안의 범위 안에 들어올 것인 지가 관심이다. 정부 원안대로 법안이 마련된다면 라이더들은 고용·산재 보험을 적용받게 되고, ‘노동자성(性)’을 인정 받아 노조 결성 등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정치적 도구도 획득하게 된다.라이더 처우 개선은 시장 급팽창의 속도를 감안하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동네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가는 라이더들의 행위는 평범한 일상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라이더 각 개인에겐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 이유는 ‘시장(市場)의 질주’가 자리잡고 있다. 배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IT(정보기술) 업체들이 플랫폼을 만들어 배달업에 뛰어들었고, 기업들은 수익의 근원인 ‘빠른 배달’에 사활을 걸고 있다. 라이더들 역시 ‘일한 만큼 돈을 번다’는 시장경제의 명제에 철저히 복종하고 있다. 교통 법규를 지키고, 몸에 피해가 안 될 만큼의 노동 시간을 준수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그렇지 않았을 때 누리는 금전의 혜택에 비하면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시장의 폭주를 제어하는 것이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이더 처우 개선과 안전한 배달 문화 정착은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누구나 공감하는 대의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실천하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달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느냐다.
논쟁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라디어 권익 보호의 선봉에 있는 라이더유니언이란 노동단체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가입자 400명(2020년 10월 기준)에 불과하지만 박정훈 위원장은 저술 활동(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을 비롯해 언론 홍보 및 정부에 정책을 건의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라이더 권익 보호와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 위원장이 말하는 핵심 요지(빅이슈와의 인터뷰에서 발췌)는 산업재해로부터의 보호, 생계를 담보할 최소한의 배달료, 라이더에게 일감을 배정해주는 배달앱 알고리즘의 공정성 확보 등 크게 세 가지다. 산재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하기작업 도구인 오토바이를 자비로 사야 한다. 교체 비용과 감가상각비도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4대 보험도 홀로 부담하고, 퇴직금이나 유급 휴일도 보장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사고 책임 역시 라이더가 진다. 사실 배달 사고가 벌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업주가 주소를 잘못 쓰거나 도로 사정이 좋지 않거나. 그런데 플랫폼 노동에선 이런 것들이 무시되고 오로지 라이더의 책임만이 부각된다. ‘책임과 비용의 전가’로 보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니언라이더는 지난해 9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배달 기사에 대한 산업재해 관련 합의안을 마련했다. 라이더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어렵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라이더가 동의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골프장 캐디, 보험 영업맨들 같은 특수고용직과 함께 배달 라이더들도 산재보험의 수혜를 받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이와 관련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준조세 성격의 공적 부조인 산재보험에 배달 라이더들이 들어오려면 투명한 소득 신고, 합리적인 사고율 분석에 기초한 적정 보험료 산출 등이 전제가 돼야한다는 얘기다. 배달 라이더 중에선 신용 불량, ‘투잡’ 등의 이유로 소득 노출을 꺼리는 이들이 꽤 많다. 소득 신고는 곧 세금과 직결되기 때문에 단번에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는 이들 또한 소득 신고가 제대로 안 할 가능성이 높다.‘안전 배달료’ 역시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일종의 최소임금 보장제와 비슷한데 이 부분은 플랫폼 사업자 뿐만 아니라 식당 주인들과 배달 이용자의 부담과도 직결돼 있다. 겨울철엔 배달 라이더들의 공급 부족으로 자영업자들이 지불해야 할 배달료가 올라가곤 한다.
알고리즘과 관련된 이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정부 법안으로 입법 예고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은 네이버 쇼핑, 쿠팡,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11번가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입점업체의 검색 노출과 관련한 기준을 공개하라는 것이 골자다. 같은 논리를 배달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복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자칫 물류 스타트업들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배달이 일상이 된 만큼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아졌다. ‘배달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인식도 중요하지만, 라이더 처우 개선에도 공짜는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일명 ‘라이더’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배달기사들이 많아진 것도 배달 전성 시대의 단면이다. ‘부릉’이란 브랜드를 갖고 있는 종합 디지털 물류 기업인 매쉬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있는 라이더만 약 4만7000명이다. 정확한 통계가 없긴 하지만, 대략 업계에선 전국에 20만명 가량이 오토바이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량을 운행하는 전국의 택배 기사 수가 5만4000명 규모(한국통합물류협회 2020년 6월 집계 기준)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이더 시장의 팽창을 가늠해볼 수 있다. 라이더의 증가로 인한 변화는 우리 일상 속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빠른 배달이 대표적이다. 롯데마트는 물류 스타트업과 제휴해 점포에서 일정 반경에 있는 소비자에게 온라인 주문 후 1~2시간 내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실험 중이다. 평소 먹고 싶던 유명 맛집의 음식도 배달로 안방에서 즐길 수 있다. 쿠팡이츠는 ‘1인 1배달’을 내세워 자존심 강한 맛집들을 배달 시장으로 끌어들였는데 이를 가능케 한 건 라이더들이다. 동대문 패션 스타트업인 브랜디도 당일 배송을 내걸고 오토바이 물류를 이용하고 있다.
라이더 시장은 ‘코로나 시대’에 실업 대란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이들 퇴교 길이면 노란색 봉고차를 몰고 와 왁자지껄 말썽꾸러기들을 예의바른 태권도맨으로 변신시켜주던 관장님은 요즘 ‘알바 라이더’로 변신했다. 라이더는 중고 마켓에서 오토바이 하나쯤 구할 여력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대표적인 임시 직업 중 하나다. 좀 거창한 말로 ‘긱(gig) 이코노미’의 대표 사례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택배 배달이 직장을 잃고, 신용불량자로 추락한 우리의 아빠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듯이 요즘은 그 역할을 오토바이 배달업이 맡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커지고, 사람들이 몰리면서 라이더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만들겠다고 밝힌 플랫폼노동자보호법이 대표적이다. 플랫폼 업체가 제공하는 업무로 돈을 버는 이른바 특수고용직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으로 ‘20만 라이더’가 신설 법안의 범위 안에 들어올 것인 지가 관심이다. 정부 원안대로 법안이 마련된다면 라이더들은 고용·산재 보험을 적용받게 되고, ‘노동자성(性)’을 인정 받아 노조 결성 등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정치적 도구도 획득하게 된다.라이더 처우 개선은 시장 급팽창의 속도를 감안하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동네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가는 라이더들의 행위는 평범한 일상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라이더 각 개인에겐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근본 이유는 ‘시장(市場)의 질주’가 자리잡고 있다. 배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IT(정보기술) 업체들이 플랫폼을 만들어 배달업에 뛰어들었고, 기업들은 수익의 근원인 ‘빠른 배달’에 사활을 걸고 있다. 라이더들 역시 ‘일한 만큼 돈을 번다’는 시장경제의 명제에 철저히 복종하고 있다. 교통 법규를 지키고, 몸에 피해가 안 될 만큼의 노동 시간을 준수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그렇지 않았을 때 누리는 금전의 혜택에 비하면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처한 현실이다.
시장의 폭주를 제어하는 것이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라이더 처우 개선과 안전한 배달 문화 정착은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누구나 공감하는 대의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실천하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달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느냐다.
논쟁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라디어 권익 보호의 선봉에 있는 라이더유니언이란 노동단체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가입자 400명(2020년 10월 기준)에 불과하지만 박정훈 위원장은 저술 활동(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을 비롯해 언론 홍보 및 정부에 정책을 건의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라이더 권익 보호와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 위원장이 말하는 핵심 요지(빅이슈와의 인터뷰에서 발췌)는 산업재해로부터의 보호, 생계를 담보할 최소한의 배달료, 라이더에게 일감을 배정해주는 배달앱 알고리즘의 공정성 확보 등 크게 세 가지다. 산재와 관련해 박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하기작업 도구인 오토바이를 자비로 사야 한다. 교체 비용과 감가상각비도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4대 보험도 홀로 부담하고, 퇴직금이나 유급 휴일도 보장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사고 책임 역시 라이더가 진다. 사실 배달 사고가 벌어지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업주가 주소를 잘못 쓰거나 도로 사정이 좋지 않거나. 그런데 플랫폼 노동에선 이런 것들이 무시되고 오로지 라이더의 책임만이 부각된다. ‘책임과 비용의 전가’로 보면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니언라이더는 지난해 9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배달 기사에 대한 산업재해 관련 합의안을 마련했다. 라이더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어렵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라이더가 동의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골프장 캐디, 보험 영업맨들 같은 특수고용직과 함께 배달 라이더들도 산재보험의 수혜를 받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이와 관련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준조세 성격의 공적 부조인 산재보험에 배달 라이더들이 들어오려면 투명한 소득 신고, 합리적인 사고율 분석에 기초한 적정 보험료 산출 등이 전제가 돼야한다는 얘기다. 배달 라이더 중에선 신용 불량, ‘투잡’ 등의 이유로 소득 노출을 꺼리는 이들이 꽤 많다. 소득 신고는 곧 세금과 직결되기 때문에 단번에 많은 수입을 얻고자 하는 이들 또한 소득 신고가 제대로 안 할 가능성이 높다.‘안전 배달료’ 역시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영역이다. 일종의 최소임금 보장제와 비슷한데 이 부분은 플랫폼 사업자 뿐만 아니라 식당 주인들과 배달 이용자의 부담과도 직결돼 있다. 겨울철엔 배달 라이더들의 공급 부족으로 자영업자들이 지불해야 할 배달료가 올라가곤 한다.
알고리즘과 관련된 이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정부 법안으로 입법 예고한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은 네이버 쇼핑, 쿠팡,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11번가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 업체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해 입점업체의 검색 노출과 관련한 기준을 공개하라는 것이 골자다. 같은 논리를 배달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복안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자칫 물류 스타트업들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배달이 일상이 된 만큼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아졌다. ‘배달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인식도 중요하지만, 라이더 처우 개선에도 공짜는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