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날아간 지붕도 못 고쳤다"…자동차 부품사의 눈물

위기의 자동차 부품산업…협력사 고사 위기

▽ '매출 1조' 현대·기아 1차 협력사도 "유동성 말랐다"
▽ 한국GM 2차 협력사 "휴가·휴직으로 버텨…한계상황"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에 한 폐쇄된 공장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사진=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유동성 부족으로 지난해 9월 태풍에 뜯겨나간 공장 지붕도 초겨울까지 수리하지 못했습니다. "

한 중견 자동차 부품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현금 부족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된 계기"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가을 내내 건물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일해야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차 부품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완성차 업체의 연간 생산량이 부품사의 '생존 마지노선'인 400만대뿐 아니라 35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부품 협력 업체사의 상황이 한층 열악해졌다.

코로나에 파업까지…협력사 '이중고' 가중

인천의 한 주물공장에서 자동차 부품 등을 만들기 위한 쇳물을 받고 있다.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해 자동차 업계는 연초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일부 완성차 업체의 파업이 겹치며 총 생산량이 35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생존 마지노선'인 400만대가 무너진 데 이어 연 350만대 생산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다.

부품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감이 없어 주 5일 근무를 포기하는가 하면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과장급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올리기도 했다. 이는 영세기업뿐만의 사정이 아니다.매출이 1조원(2019년 기준)에 육박하고 1000명 가까운 직원이 근무하는 중견기업 A사의 경우 지난해 여름 태풍 피해를 수리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현대차의 1차 부품 협력업체인 A사는 지난해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려 지난해 9월 태풍으로 공장 곳곳의 슬레이트 지붕이 뜯겨나갔지만 초겨울까지도 피해를 방치했다.

A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일주일 내로 고칠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메워지지 않았다"며 "이유를 물어보니 회사에 현금이 부족해 당장 고치진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돈이 없어 공장 지붕도 못 고친다는 점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태풍이 상처를 남기고 지나간 A사에는 연이어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이 닥쳤다. 지난해 10월께 부장급(팀장)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이 이뤄졌고 조직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과장급도 희망퇴직 대상에 올랐다. 칼바람을 피한 이들도 다음은 본인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고 이전에 관심두지 않던 자격증 공부를 하는 등 미래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성과급 '반토막'…큰 적자 겨우 면해

기아차 1차 협력업체인 B사는 지난해 성과급이 대폭 줄었다. B사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성과급이 300만원 이상 줄어든 400만원대에 그쳤다. 다른 산업군과 비교하면 그래도 많은 액수이지만, 자동차 업계의 급여 산정 방식을 감안하면 상당한 타격"이라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통상 자동차 부품업계 기본급은 최저임금에 준한다. 여기에 기본급보다 많은 각종 수당과 상여금 등이 더해지는 식이다. 이 회사 역시 2010년대에는 대리급 직원에게 연 1000만~15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10년 새 성과급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B사 관계자는 "그래도 1차 협력업체는 금형비와 설비비를 선지급받은 덕분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실적도 큰 적자는 면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월 350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1조원의 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시로 납품대금 5870억원과 부품양산 투자비 1050억원이 조기 지급됐고 3080억원의 현금도 무이자로 지원됐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협력업체가 아니거나, 2·3차 협력업체인 경우에는 사정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시흥시 시화공단내에 공장 매매, 대출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진=허문찬기자 sweat@hankyung.com
실제 한국GM 1차 협력사 모임 협신회에 따르면 일감 부족으로 주 4일 근무를 시행하거나 급여 지급이 밀린 협력업체가 적지 않다. 쌍용차 1차 협력사 모임인 쌍용자동차협동회 역시 지난 12월 만기가 도래한 어음의 절반만 쌍용차에게 현금결제를 받고 나머지 납품대금 결제는 미루기로 한 바 있다.

한국GM 2차 협력사인 C사는 현재 감원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GM에서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생산이 시작되며 40여 명 규모이던 인력을 50명 수준으로 늘렸지만, 생산 차질 반복으로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이다. 한국GM은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6만여 대 규모 생산손실이 발생했다. 하반기에 특근을 통해 이를 만회하려 했지만, 노조 부분파업으로 2만5000여대 규모 생산손실만 추가됐다.

C사 관계자는 "한국GM 노조의 부분파업 소식을 듣고 답답했다. 그건 집단이기주의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상반기 생산손실로 판매하지 못한 재고가 급증하며 전원 유급휴가와 유급휴직으로 버티며 애를 쓰고 있는데 (한국GM의) 파업 소식은 날벼락이었다"며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 하반기도 겨우 버텼지만 이제는 한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직원들은 파업을 하면 회사 문을 닫고 1차 협력업체의 부품을 받지 않는다"며 "그러면 1차 협력업체도 공급 재개 전까지 2차 협력업체에게 납품을 받지 않고, 원자재 부담은 2차 협력업체가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 체감 안 돼…은행은 대출 회수 혈안

한 뿌리기업 공장에서 직원이 일하고 있다.
C사 관계자는 "2차·3차 협력업체들은 생산이 밀리면 즉각적으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파업 등으로 완성차 공장이 멈추면 협력업체는 대출을 받아 위기를 넘겨야 한다. 많은 협력업체들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자동차 부품업계의 이러한 자금난을 해소하겠다며 지난 6월 특별보증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시중 은행들도 대출 만기 연장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온도는 달랐다. "정부 지원은 효과가 느껴지지 않고 은행들은 대출금 회수에 혈안이 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A사 관계자는 "공장 부지와 건물, 장비까지 은행에 담보를 잡히지 않은 물건이 없다"며 "대출을 연장하고 싶다면 담보를 내놓으라는 게 시중 은행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C사 역시 "은행들은 만기를 적극 연장해주겠다고 했지만, 정말 최소한의 약속만 지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B사 역시 "사명을 밝히고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 은행에서 바로 연락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사 관계자는 "올해 정부 지원금액은 전혀 체감되지 않았다. 지원 규모를 늘리고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자동차 부품업계는 2차·3차 협력업체부터 공멸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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