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美 경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저금리 4년 더 이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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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미국경제학회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성공적으로 이끈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사진)이 “미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3일(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미국경제학회(AEA) 연례총회 자리에서다. 그는 “12년 전 위기 때와 같이 금융감독 시스템을 재점검할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팬데믹 충격과 정책대응' 세션
"증시·부동산·제조업 경기 좋지만
서비스는 부진 'K자 양극화' 진행
이젠 금융시스템 재점검 나서야"
“공격적 통화 정책 효과”
버냉키의 별명은 ‘헬리콥터 벤’이다. 공중에서 현금을 무차별 살포할 정도의 공격적인 통화 팽창 정책을 선호한다고 알려져서다. Fed는 금융위기 당시 연 5.25%이던 기준금리를 1년도 안 돼 제로 수준으로 낮췄다. 또 1년8개월에 걸쳐 1조3000억달러를 시장에 공급하는 초유의 양적완화를 단행했다.제롬 파월 현 Fed 의장도 선례를 답습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선언이 나온 작년 3월 두 차례 긴급회의를 소집해 10여 년 만에 또다시 제로 금리 시대를 열었다. 매달 1200억달러씩 채권도 매입 중이다. 이날 ‘팬데믹 충격과 정책 대응’ 세션에 참석한 버냉키는 “Fed의 발 빠른 대응으로 경제 충격이 최소화됐다”고 평가했다.2006년 Fed 의장으로 취임해 8년간 통화당국을 이끈 버냉키는 “작년 6월만 해도 Fed는 2020년 성장률을 -6.5%로 예상했다”며 “지금은 -2.0%로 높여 잡았을 정도로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례 없는 보건위기를 맞아 공격적인 통화 팽창 정책을 편 게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핵심 정책 변수로 꼽히는 미 실업률은 작년 말 6.7% 수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개월 전만 해도 9% 밑으로 떨어지는 걸 기대하기 어려웠다. 버냉키는 “팬데믹 선언 초기에 대규모 기업 부도 사태를 걱정했지만 낮은 금리 덕분에 현실화하지 않았다”며 “Fed의 초저금리 기조가 약 4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버냉키는 “일반적인 경기 침체는 사회 전반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만 코로나19 위기는 일종의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양상이 다르다”며 “증시와 부동산뿐만 아니라 제조업 경기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대면 서비스 업종과 저임금 근로자가 큰 타격을 받는 ‘K자형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냉키는 “2008년 위기 때 금융 부실을 막기 위해 전체 시스템을 점검하고 여러 관리감독 장치를 마련했다”며 “오랜만에 다시 기회가 온 만큼 그림자금융(규제가 약한 비제도권) 시장을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라인하트 “위기 때 정부 대출 급증”
또 다른 세션 ‘재앙 관리하기’에 참석한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얽힌 국가들은 위기 때 재정적으로 더 긴밀하게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나라에서 위기가 터지면 경제적으로 얽힌 다른 나라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협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라인하트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세계 금융위기 역사를 연구한 책 《이번엔 다르다》로 유명한 석학이다. 그는 다른 두 명의 저자와 공동 집필한 ‘재난 대처: 두 세기의 정부 간 대출’ 논문도 이날 발표했다.라인하트는 논문에서 지난 200년간 정부, 중앙은행, 국제기구 등을 포함한 정부 간 대출을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 정부 간 대출은 전쟁, 금융위기 때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해 1월 이후 5월까지 민간 대출은 급감했지만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중앙은행 등을 통한 정부 간 대출은 대폭 증가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 기간 정부 간 대출액은 1000억달러를 넘는다.
민간 대출은 경기 순응적인 반면 정부 대출은 경기 조정적이라는 게 라인하트의 설명이다. 민간 대출은 경기에 비례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데 비해 정부 간 대출은 경기가 좋을 때 줄어들고, 경기가 나쁠 때 늘어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등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 간 대출이 경기 급락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뉴욕=조재길/워싱턴=주용석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