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책임 회피와 국민 무시 : 우리나라 바이오정책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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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우리나라 바이오 정책은 정부가 책임을 모면하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듯 하다. 그 책임을 과학기술연구자와 민간업계에게 전가하기도 하고 국민 탓을 하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 바이오 정책의 모습은 매우 거칠고 둔탁하다. 혁신과 융합의 기회를 제발로 차버리고 있는 모양새다.
책임 모면 : 정부 의사결정 과정정부가 마땅한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여러 가지 위원회를 설치하고 복잡한 절차들을 만들어서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전문가의 전문성을 뿌리채 뽑는 결과를 야기한다.
바이오 분야는 유사한 위원회가 다수 존재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배아 연구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공용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 질병관리청 등 복수의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경우에는 기관 IRB 승인과 함께 식약처 승인을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게 정부 의사결정 과정의 실체이다. 반면 영국의 경우 승인을 국가가 주도하나 단일기관(HEFA·인간배아생식관리국)에서 심의를 마치므로, 절차적 복잡성이나 시한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실제로 배아 연구 승인에 걸리는 시간은 한국의 경우 8~9개월이 소요되는 반면 영국의 경우는 이의 절반인 4개월이 소요된다.
옥상옥으로 설치한 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은 심지어 깜깜이 방식이다. 2019년 초부터 시행된 보건복지부의 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검사 서비스 인증제 사업의 경우, 심의위원의 구성 및 심의 과정 등 모든 의사결정 과정이 비공개이며, 사업을 신청한 기업체들은 심의 결과만 통보받는다.거버넌스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의사결정의 투명성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 주체인 기업을 배제해 연구계획 제출 이후 모든 과정을 블랙아웃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의 바이오 분야 의사결정기구인 국생위 역시 어떠한 과정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연간 수 차례 이루어지는 회의의 회의록조차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영국과 일본은 위원회의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의 경우는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그 이유를 공표해야 함을 생명윤리전문조사회 운영규칙 제11조(의사록)에 명시하고 있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 구성은 윤리계와 과학계의 산술적 균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국생위의 경우, 종교인과 시민단체대표를 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있으며, 윤리계 인사를 과학계 전문가와 동수로 선임하도록 생명윤리법상 규정하고 있다. 국생위뿐만 아니라 산하 전문위원회의 경우도 전문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유전자 전문위원회의 경우, 공무원을 제외한 6명 중 법학전공자 2명, 의사 3명, 기타 1명으로 유전자 관련 기초과학자는 1명도 없다. 신의료기술평가의 경우에도 홈페이지 내에 의사협회, 치과협회, 한의사협회, 소비자단체, 변호사단체에서 추천된 자 및 보건의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전문가란 관련 정책에 대해 과학적 논의가 가능한 사람이다. 과연 이러한 구성 하에서 과학적 문제에 대해 과학적 토론이 전개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반면 일본의 생명윤리전문조사회와 미국의 생명윤리대통령위원회는 구성원 전원이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는 이렇게 정책의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직무유기이다. 복잡하고, 확인할 수 없는 의사결정 과정은 과학적 발전의 신속한 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이며, 전문성을 배제한 위원 구성은 지극히 편향되고 불합리한 정책을 유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리스크 전가: 너무나도 힘든 기업과 연구자들
도전에는 댓가가 있기 마련이다. 정부가 지지않는 책임은 흘러흘러 과학자와 연구자, 그리고 산업계가 짊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과학기술연구와 산업의 불확실성과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리스크 전가 행태의 핵 중의 하나이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신(新)’의료기술은 임상 논문의 숫자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신의료기술평가의 안전성·유효성 검토 단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든 의료를 증거 기반 의학으로 입증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특히 첨단의료일 경우에는 그 근거가 될만한 임상 자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벌어진 두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2019년 4월, 헬스케어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은 우울증 치료기기를 개발해 신의료기술평가를 신청했지만 해외 논문과 데이터 부족을 이유로 탈락했다. 이 업체는 유럽 의료기기 국제규격 인증까지 받아 현지 기업들과 수출 협상까지 했지만 신의료기술평가 탈락으로 사업화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020년 1월에는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가 줄기세포를 이용한 급성 심근경색 치료방법인 ‘매직셀’ 사용을 불허했다. 연구팀에서 총 24개의 논문을 제시했지만 이중 근거로서 인정받은 논문은 5개에 불과했다.
과도한 임상 근거 요구는 결국 국내 기술의 실제 임상 근거(Real World Evidence)를 쌓을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은 혁신 기술의 메디케어 보험 급여(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제도를 통해 4년 동안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다. 4년 동안 부족한 임상 근거를 채운 뒤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확실한 임상 근거를 요구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받는 동안 기술 혁신은 이미 제동이 걸리기 마련이다. 결국 시장 접근성과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업계에 전가해 산업의 형성 자체를 봉쇄하는 꼴이 되었다.
위험 부담의 공유 부족: 부적절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정부는 국민들을 무지몽매한 아이로 취급한다. 모험과 도전과 관련된 리스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공유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민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고 한편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 같다.
정부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엉망진창이다. 정부가 문제라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문제가 아닌데도, 국민들에게 막연한 불안함을 확대·재생산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사안에 대한 리스크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리스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국민들에게 그 어떤 선택권도 주지 않는다.
일반 대중은 바이오 연구 분야에 대해 양면적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최근 초고령화 사회 진입, 감염병 사태 등 바이오 기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문해력, 정서적 편견 등으로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 또한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은 불확실한 위험을 수반하는 만큼, 국민들과 소통하는 적극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련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최근 필자가 전국의 성인 남녀 52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들이 바이오 분야 리스크에 대해서 상당히 잘 인지하고 있다. 잔여배아 연구범위 확대에 대한 리스크에 대해 설문한 결과 대부분이 발생 가능한 리스크 항목에 동의(52.63% 이상이 ‘그렇다’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규제가 지나치게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예를 들면 잔여배아 연구범위 확대 범위와 관련한 질문에 85.6%가, 연구 가능한 배아의 범위와 관련한 질문에 84.0%가 해당 규제 수준보다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설문 결과가 보여주듯 우리 국민들은 리스크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규제 완화에 따른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감안하고도 규제 개선의 필요성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국민들이 리스크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규제로 옥죄는 것은 국민들을 바보 취급하며 이용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제도의 낮은 정교성과 거친 접근
책임 회피와 리스크 전가의 결과물은 저질 정책이다. 바이오 분야 정책은 유달리 매우 둔탁하고 거칠다. 부작용도 심하고 민간의 자율과 혁신의 창발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바이오 분야의 리스크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으며, 치명적이며, 통제 불가능하고, 회복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2019년 한 해, 미국은 약 3000만명이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받았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해 국내에서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받은 고객은 불과 2만명에 그친 것으로 추산된다. DTC 유전자검사의 경우 유전자검사로 인한 상업화, 오남용, 가계의 유전정보 유출 등의 가능성을 이유로 검사 항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바이오 정책은 기초연구부터 실용, 산업화까지 각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연구와 산업화가 혼재된 정책이다. 결과적으로 연구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연구단계에서의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장래에 산업화될 것을 고려해 과도하게 사전적으로 규제를 적용한다. 사람의 수정과 발생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 배아 연구를 진행할 때도 생식세포(인간 대상 연구)라는 이유로 IRB 승인 의무화 등 임상연구 수준으로 규제해 기술혁신을 저해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 연구는 응용 단계 또는 임상 연구뿐만 아니라 생명 현상의 작용기전을 확인하는 기초연구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인간 대상의 임상연구로 다수의 연구를 해석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리스크의 수준에 따른 법과 규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는 리스크의 레벨에 따라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장기추적하는 선진화된 규제 방식이 마련되어야한다. 일본의 첨단의료법은 리스크 수준을 3단계로 구분해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효율적인 위험 기반 규제 프레임워크인 사전인증프로그램(Pre-certification programme)을 통해 의료기기 제품이 아닌 제조사의 안전관리 역량을 평가해 제품을 인증하는 새로운 방식의 규제를 도입했다. 리스크에 대한 과대 해석과 두려움으로, 가장 기초적인 연구까지 지나치게 통제하고 사전금지를 행사해서는 안된다. 사전금지는 기초적인 원리 속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은 자율과 혁신은 없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물론 과학기술의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책의 지향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업화, 오남용, 프라이버시 유출 등을 이유로 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태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