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 뒤집어라"…트럼프 압박에 난감한 美 넘버2 [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마이크 펜스 부통령. AP연합뉴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난감한 상황에 몰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최종 확정하는 오는 6일(현지시간)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할 펜스 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대선 뒤집기'를 종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트윗을 통해 "부통령은 부정하게 선택된 선거인단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전날 조지아주 유세에선 "펜스가 우리를 위해 해내길 바란다"며 "그가 해내지 않으면 나는 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조지아주 유세 현장으로 떠나기 전에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펜스 부통령을 만났다고 CNN은 전했다. '대면 압박'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 대선은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각 주별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인증하고 대통령 당선인을 최종 발표하는 것으로 공식 절차가 마무리된다. 과거 대선에선 상·하원 합동회의는 형식적 절차에 그쳤다. 보통 대선 직후 언론 개표 결과가 집계되면 패자가 깨끗이 승복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사기'를 주장하며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선거인단 투표 결과에 의의제기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이의제기 대상이 된 주의 선거인단은 상·하원이 모두 합의하면 최종 집계 대상에서 제외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일부 공화당원들이 기대를 거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총 538명의 주별 선거인단 투표 결과는 바이든이 306명, 트럼프가 232명이다. 하지만 이의제기 대상이 된 주가 집계에서 빠지면 어느 후보도 과반수(270명 이상) 득표를 못할 수 있다.

이 경우엔 하원에서 대통령을 결정하는데, 연방 하원의원이 투표를 하는게 아니라 각 주에서 한 명씩 대표를 정해 대통령을 뽑는다. 현재 각 주의회를 기준으로 보면 공화당이 다수인 주가 더 많다. 즉 각 주 대표 숫자에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많아 이들이 투표를 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실현 가능성이 없다. 현재 하원 다수당이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아무리 이의제기를 해도 하원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측이 제기한 각종 선거 소송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같은 이유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지난달 14일 주별 선거인단 투표가 끝나자 민주당 조 바이든을 '대통령 당선인'으로 인정하며 공화당 의원들에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이의제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펜스 부통령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거리를 둬왔다. 최근 공화당 루이 고머트 하원의원이 텍사스주 연방법원에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복수의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상정될 경우 부통령이 어떤 선거인단의 표를 반영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소송을 제기하자 펜스는 재판부에 소송 기각을 요청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일 보도하기도 했다. 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바꿀 권한이 없다는게 펜스의 기각 요청 사유로 알려졌다. 실제 텍사스주 연방법원은 이 소송을 기각했다.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바꾸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 미 헌정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펜스 부통령이 6일 상·하원에서 합동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펜스 부통령으로선 트럼프 지지층의 움직임이 신경쓰일 순 있다. 2024년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펜스로선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7400만명 이상의 유권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WP는 "펜스는 어렵고도 아마 부정적 결과만 낳는 '루즈-루즈'(lose-lose)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며 "(대선 뒤집기를 거부할 경우)2024년 대권 도전에 필요할 수 있는 지지자들과 상관을 화나게 하거나 (대선 뒤집기를 시도할 경우)위법한 무언가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