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분석] 희귀의약품 시장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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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12월 12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알렉시온을 전날 종가 대비 45% 높은 주당 175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알렉시온 주주들에게 60억 달러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아스트라제네카 주식을 주기로 했다. 인수 절차는 올 3분기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아스트라제네카 사상 최대 규모의 M&A이고, 2020년 글로벌 제약·바이오 분야 최대 규모 거래다.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CEO)는 면역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알렉시온을 인수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알렉시온 인수로 아스트라제네카는 수익성이 높은 희귀질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게 됐다는 평가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몇 년 전까지 주요 제품의 특허 만료에 따른 제네릭의 출현으로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항암제 분야를 강화해왔다. 다음으로는 희귀질환을 선택한 것이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때문에 각국의 보건당국은 희귀질환 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높은 약가를 인정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의 높은 수익성은 빅딜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 다케다는 2019년 고셔병과 파브리병 등 희귀질환에 집중하고 있는 샤이어를 620억 달러에 인수했다. 존슨앤드존슨은 2017년 폐동맥 고혈압 치료제를 가진 악텔리온을 300억 달러에 사들였다.솔리리스, 연간 약가 5억 원에 달해

알렉시온의 주력 제품은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 솔리리스다. 2019년 매출이 39억 달러에 달한다. 면역시스템의 일부인 말단 보체를 억제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비정형 용혈성요독증후군, 중증근무력증, 시각 신경 척수염 등 면역 관련 질환으로 적응증(적용 질환)을 확대 중이다.

솔리리스는 성인 기준 투약 비용이 연간 50만 달러에 이르는 초고가 바이오의약품이다. 국내 기준 솔리리스 1바이알(30ml)의 가격은 비급여 기준 약 600만원, 연간 투약비는 5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높은 약가와 다가오는 특허 만료로 인해 국내외 제약사들이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있어 경쟁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첫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를 목표로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 암젠도 개발에 나섰고, 이수앱지스는 해외 임상 1상을 마쳤다.

알렉시온은 작년 1월 솔리리스의 후속 약물인 PNH 치료제 울토미리스를 출시했다. 더 많은 환자에게 쓰이기 위해 솔리리스 대비 10% 낮은 약가를 책정했다. 70%의 환자가 솔리리스에서 울토미리스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떠오르는 블루오션 희귀의약품희귀의약품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개발 비용이 적게 드는 반면 임상 성공 시 강한 시장 지배력을 기대할 수 있고, 높은 약가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약물평가연구센터(CDER)에 따르면 FDA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최근 5년간 220개의 신약을 허가했다. 2019년 FDA는 48개의 신약을 승인했고, 이 중 희귀질환 관련 의약품은 21개로 43.8%를 차지했다. 2015년 10개(전체 45개), 2016년 4개(22개), 2017년 9개(46개), 2018년 12개(48개) 등 매년 허가 신약의 약 20%가 희귀의약품이었다.

FDA는 환자가 20만 명 이하인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보고 관련 치료제 개발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ODD·Orphan Drug Designation)을 받으면 판매허가 승인 시 7년간 시장 독점권을 준다. 신속심사를 적용해 보통 1년 이상이 걸리는 허가 심사기간을 6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임상 2상만으로도 3상 조건부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또 200만 달러에 달하는 허가심사 비용 면제, 임상 비용의 50% 세금 면제 등을 지원한다.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소규모의 임상 결과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에피자임은 치료제가 없던 상피육종 치료제 타즈베릭에 대해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후, 환자 60여 명의 임상 2상 결과만으로 FDA 판매허가를 받았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유럽의약품청(EMA)도 유사한 제도를 통해 희귀의약품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EMA의 경우 판매허가 승인 시 최소 6년에서 최대 10년의 시장 독점권을 부여한다.
이 같은 혜택으로 희귀의약품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이밸류에이트파마는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이 2018년 1270억 달러에서 2026년 2550억 달러(약 280조 원)로 약 2배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6년에는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희귀의약품이 18.3%를 차지할 것이란 예상이다.

비영리단체인 글로벌진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7000여 종의 희귀질환이 있고, 환자는 3억5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FDA가 500개 이상의 희귀의약품을 승인했으나, 희귀질환의 95%는 FDA에서 허가받은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숨겨진 매력 PRV

메드팩토는 지난 12월 10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발표했다. 확보된 자금은 희귀난치성 질환의 임상시험에 활용할 계획이다. 메드팩토는 현재 데스모이드종양의 백토서팁·이마티닙 병용요법에 대해 FDA 희귀의약품 지정 절차를 밟고 있다.

대장암과 비소세포폐암 등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은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희귀질환에 대해서는 조기 상용화해 자체 매출 제품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희귀의약품의 경우 상대적으로 영업이 용이하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김새롬 메드팩토 전략기획부 이사는 “희귀질환의 경우 전문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교수와 병원이 많지 않다”며 “소수의 전문가와 병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마케팅이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메드팩토는 올 상반기 데스모이드종양에 대한 희귀의약품 지정과 함께, 한국과 미국 등 다국가 허가용 임상 승인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하반기에 골육종을 포함한 2종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서도 허가용 임상을 개시한다는 방침이다.

희귀의약품 개발에 있어 숨겨진 매력 중 하나는 우선심사권(PRV·Priority Review Voucher)이다. FDA는 열대성 질환 및 희귀소아질환의 신약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관련 치료제를 승인받은 회사에 PRV를 부여한다. PRV는 판매허가 심사기간을 6개월로 단축시켜 주는 것으로, 다른 기업에 판매가 가능하다. 2019년 PRV는 약 9500만 달러(약 1000억 원)에 거래됐다.현재 PRV 획득이 기대되는 국내 기업으로는 메지온, 큐리언트, 지트리비앤티 등이 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