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가 축복?…눈덩이 부채가 디플레 부를 수도"

2021 미국경제학회
노벨상 석학들 '유동성 과잉' 우려

정부부채 조달 부담 덜었지만
인플레 현실화땐 증세 불가피

美 전방위 경기부양책 여파
달러 기축통화 지위도 '흔들'
5일(현지시간) 미국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선 통화·재정정책의 실증적 연구로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와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가 주목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국이 유례없는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미 중앙은행(Fed)은 작년 3월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췄고, 정부는 지금까지 3조5000억달러 규모의 부양책을 시행했다. 3일간 화상으로 열린 세계 최대 경제학계 행사는 이날 막을 내렸다.

“Fed는 화수분 아냐”

‘초저금리 환경 속 통화·재정정책 연계’ 세션에 참석한 심스 교수는 저금리 환경이 정부 부채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빚을 무한정 창출해도 된다는 현대화폐이론(MMT)을 강하게 비판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에서조차 통화를 공급하는 Fed가 화수분(widow’s cruse)이 아니라고 강조했다.그는 “실질금리가 제로이기 때문에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추가 부담을 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시점이 되면 근로소득세 등의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MMT라는 좌파적 개념이 결과적으로 세금 구조를 왜곡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스 교수는 벡터 자기회귀 모형(VAR)을 활용해 경제정책 등이 바뀔 때의 영향을 연구해온 이론계량경제학의 대가로 꼽힌다. 그는 “금리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급작스러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맞을 수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정부가 또다시 막대한 규모의 적자 재정을 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 주도 정책에만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전트 교수와 마르코 바세토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공동으로 ‘재정·통화정책: 속도위반 결혼(shotgun wedding)’이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바세토 이코노미스트는 “재정과 통화정책 모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며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어 두 정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 자의적일 뿐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초저금리가 부채 조달 비용을 낮추고 국가부채 비율을 개선하는 효과를 내지만, 동시에 (정부 기금 등의 이자소득 감소로) 복지 활용 자금을 줄어들게 한다”며 “정부 부채에서 중요한 건 한계 이자(가장 높은 이자)이지 평균 이자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달러화 신뢰 깨트릴 수도”

이날 총회에 참석한 경제학계 석학들은 갑자기 시작된 저금리 환경이 일견 축복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히카두 히스 런던정경대(LSE)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가 낮다고 해서 재정적으로 공짜 점심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거품을 만들어 내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통화정책 외 다른 변수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공공부채를 급격히 늘려놓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베노이트 모존 국제결제은행(BIS) 이코노미스트는 “저금리 환경은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쓰기 어렵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가 부채를 계속 늘리다 보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수준이 정상 범주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부채 디플레이션’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이노코미스트 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미국 정부 부채의 급격한 증가가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부양책이 결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등에 작지 않은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