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없는 '아웃사이더 문명'·새로운 관점의 한국사

신간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만인만색 역사공작단'

유럽 중심의 문명사 서술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문명을 소개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책들이 출간됐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문화학자인 하랄트 하르만(75)은 '문명은 왜 사라지는가'(돌베개)에서 교과서에서 주로 다루는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더스·황하 등 세계 4대 문명 중심의 역사 해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하르만은 특히 식민지 시대 역사를 서술할 때 4대 문명을 중심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4대 문명 발상지는 중국 황하를 제외하면 모두 영국 제국주의와 관련이 있는데, 유럽 중심의 역사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준 흔적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삭제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른바 '아웃사이더' 문명 25개를 소개한다.

이 문명들은 분명히 흔적을 남겼고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승리자나 후속 문명에 의해 억압·금지되고 다른 문명의 성취로 여겨지면서 결국 잊혔다고 설명한다.
책은 6천년 전 도나우 문명을 언급하며 사회적 위계질서와 가부장적 사회 형태는 모든 초기 문명의 규범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과거 헝가리 왕국의 도나우 문명처럼 평등한 사회 모델도 있었다는 것이다.

옛 유럽인의 취락지(주거 집단 형성 장소)에 특권 지도층과 사회적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특징이 없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묘지 문화에서 빈부와 성별의 차이가 없고, 신분을 상징하는 왕홀(王笏)이나 지배 계급에 속하는 종족을 확인할 문장 등 상징적 인공물이 없으며, 궁전 등 웅장한 건물도 없다고 설명한다. 하르만은 "고(古) 유럽의 초기 농경민 공동체는 노동 분업이 발달해 있었다"며 "아이 돌보기와 직조, 원예처럼 여성이 선호하는 분야와 건축, 금속 가공, 원료 조달처럼 남성이 선호하는 분야가 있었지만 서로 지배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또 "이런 평등한 사회 구조는 때로 모권(母權) 사회로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며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남녀 사이의 관계는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었다"고 덧붙인다.

하르만은 기원전 7천500년에서 5천600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 아나톨리아의 신석기 시대 차탈회위크 문명이 몰락한 건 기원전 5천800년 무렵 기온 상승에 따른 말라리아모기 창궐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이 문명 지역의 무덤 속 유골에서 말라리아에 따른 기형적 뼈를 다수 확인했다는 것도 이런 분석의 배경 가운데 하나다.
2016년 구성된 신진 역사연구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미디어팀'은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서해문집)에서 19가지 주제 아래 기존에 알려진 한국사 가운데 오해가 있는 부분을 짚고, 새로운 역사 지식을 공유한다.

364회에 걸쳐 진행한 역사 전문 팟캐스트 '역사공작단'에서 다룬 주제 가운데 재미있게 녹음하고 반응이 좋았던 방송을 선정했고, 이에 더해 앞으로 하고 싶은 주제도 함께 골라 책으로 묶었다.

이들은 한국 고대사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국가를 형성했지만, 전성기를 제외하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만주 지역 '부여'에 주목한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하는 부여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에 항복하기까지 700여 년간 존속한다.

책은 부여라는 명칭의 기원은 평원과 강, 산 이름 등에서 유래했다는 논리가 있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말한다.

부여가 처음에는 녹산(사슴 산)에 거주했다는 사실과 이후의 역사인 발해에서 귀하게 여기는 게 부여의 사슴이라는 점 등을 토대로 사슴으로부터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또 역적 혹은 영웅이라는 극단적 평가가 존재하는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에 대해 각 시대는 그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려 했는지 옛 사료를 토대로 분석한다. 윤리적 당위로서의 접근을 배제하고 그가 펼친 정치·외교 정책이 고구려의 흥망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수십 년간 최고 권력자로서 국가 정책에 관여한 연개소문에게 고구려 멸망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