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장터, '취향'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모두의 관심사'아닌 '취향' 소비가 큰 흐름
'취향 소비+공간 정리' 마케팅 본격화
미국처럼 중고거래 시장 세분화 전망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사진=번개장터
번개장터는 중고 상품을 사고 파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거래액이 1조3000억원에 달한다. 2019년(1조원) 대비 30% 급성장했다.

매월 200만개가 넘는 상품이 등록되고 10일 내에 판매되는 비율이 54%나 된다. 전체 이용자의 80%가 MZ세대다.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모두의 관심사’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요새는 사람들의 니즈가 매우 다양해졌다”며 “맛집, 여행, 의류 등 여러 소비 분야에서 좋다고 소문난 건 많이들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그 중에서 어디에 집중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취향’에 따른 소비가 큰 흐름이란 얘기다. 번개장터는 ‘취향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중고거래 인프라 구축
⊙전국 비대면 거래 가능한 번개페이
⊙신뢰할 수 있는 시세정보 제공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던 중고거래는 매우 번거로웠다. 원하는 상품에 댓글을 달고 연락처를 교환한 뒤 현금을 인출해서 약속 장소에서 만나 물건을 확인하고 돈을 건네는 식이다. 번개장터는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중고거래를 모바일 앱으로 쉽게 할 수 있게 했다.다음은 지역기반의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과 차별화였다. 지역기반의 강점은 사고 파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 거래하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대면 거래다 보니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기반이라서 살 수 있는 상품의 종류와 양이 제한적이다.

번개장터는 ‘전국 중고거래를 안전하게’라는 카피를 내세웠다. 지역기반에 비해 제품 ‘구색’이 강점이다. 그러나 직접 만나서 확인하기 어려워 신뢰가 약점이었다.

번개장터는 신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번개페이를 선보였다. 번개페이는 구매자가 미리 결제한 금액을 우선 제3자인 번개페이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상품 전달이 완료되면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물건을 받고 돈을 내세요’가 가능하다.번개장터는 번개페이를 만들려고 3년간 신용카드사 및 간편결제 회사들을 상대로 엄청 공을 들였다. 이 회사들이 번개장터가 개인간 거래라는 점을 들어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재후 대표는 “신용카드사들과 적립금 페이백이나 첫 결제 무료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할 정도로 번개페이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현재 번개장터 거래액 중 12%가 번개페이로 이뤄지고 있다.

중고거래는 판매자나 구매자가 정확한 시세를 알기 어렵다는 게 약점이다. 번개장터는 지난해 11월 국내 유일 중고폰 빅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피엠(UPM)과 손잡고 시세 조회부터 거래까지 앱 내에서 한 번에 가능한 ‘내폰시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사진=번개장터

취향 마케팅 본격화

번개장터는 ‘취향을 소비하고 공간을 정리하는 중고거래’를 내세워 마케팅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후 대표는 “예전엔 마케팅없이 입소문으로 가능했지만 지난해부터 중요 카테고리에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거래가 개개인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 취향에 맞춰 거래하는 경험이자 놀이로 진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취향 소비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⑴ 지난해 11월 드로우 이벤트와 페스티벌을 결합한 ‘번개장터 월드 드로우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구하기 어려운 럭셔리 아이템과 디지털 기기를 추첨제로 구입할 수 있는 드로우(draw) 이벤트와 방구석 1열에서 즐길 수 있는 인기 아티스트들의 공연 등을 진행했다.

⑵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의 ‘송호준 요트 프로젝트(IWMY)’를 후원하는 캠페인도 주목받고 있다. 2013년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송 작가는 세계일주를 할 요트를 마련하려고 자신이 좋아했던 물건을 번개장터에서 판매하고 있다.

⑶ 매주 월요일 밤 방영되는 tvN 예능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와 협업해 운영중인 ‘신박한 스토어’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배우 신애라 등이 의뢰인의 집을 찾아가 소장품을 정리해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내용이다. 매주 방송이 끝난 후 ‘신박한 스토어’에서 의뢰인이 정리한 아이템을 선착순으로 판매한다.

⑷ 지난해 6월부터 유튜브 채널 ‘채널덕쓰’와 함께 ‘리:플렉스(RE:FLEX)’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채널덕쓰엔 셀럽, 아티스트가 출연해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소개한다. 출연자의 소장품이 번개장터에 개설된 ‘RE:플렉스’ 상점을 통해 판매된다.


“중고거래 시장 세분화, 가속화된다”

이재후 대표는 “3~4년 전만해도 ‘온라인에서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많이들 했지만 이제는 별로 하지 않는다”며 “한 회사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5년 전 쯤 유통연감을 보면 유통의 업태를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 홈쇼핑, H&B, 그 다음에 온라인 식으로 분류했다”며 “당시엔 오프라인 5개, 온라인 1개였지만, 지금은 온라인이 커져서 온라인 안에서도 생필품 사는 곳, 어쩌다 한 번 가격비교해서 사는 곳, 특정한 취향을 반영한 아이템별로 버티컬 서비스가 강한 곳 등으로 매우 세분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제 시작단계인 중고거래 시장은 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차지하기 보다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여러 기업이 충족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경우 중고거래 시장에서 크레이그리스트만 존재하다가 지금은 스니커즈 전문 스탁엑스, 명품백 전문 더리얼리얼, 남성 고객 타깃의 그레일드 등 여러 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듯이 국내 중고거래 시장도 세분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마케팅은 결국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고객에게 어떤 얘기를 하느냐가 핵심인데요. 과거엔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준비한 뒤 그 상품과 서비스의 좋은 점을 고객에게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걸 먼저 캐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충족시켜주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재후 대표는 “미디어커머스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인플루언서가 말을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며 “유창한 한 마디로 고객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번개장터는 6개월 뒤 고객에게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지를 가장 고민한다고 했다. ‘번개같이 빠른 반응’이란 카피를 고객에게 자신있게 제시하고 싶단다.

번개장터에서 물건을 판매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물건을 올린 뒤 단순한 ‘찔러보기’가 아닌 ‘찐 반응’이 최대한 빨리 오기를 원하므로 그런 니즈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개인화 추천 등의 관련 기술을 더욱 고도화시켜야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고객의 니즈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해서 그걸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게 마케팅의, 마케터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


■ 교수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소비자 행동은 구매, 소비, 처분의 모든 단계와 관련이 있다. 과거의 소비자들은 처분 단계에서 제품을 그냥 버리거나 가까운 주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때문에 마케팅에서 처분의 영역은 구매와 소비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중고거래 마켓의 활성화로 처분 단계의 중요도가 점차 올라가고 있다.

MZ 세대의 니즈, 경제 불황, 코로나, 레트로 감성 등과 결합하면서 처분이 구매 못지 않은 ‘새로운 시장’ 을 형성하고 있다. 번개장터의 성장 역시 이런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처분이 활성화되면 새로운 구매도 덩달아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다. 과거 같으면 사지 않을 제품을 중고거래가 활발하다고 생각할 경우 더 쉽게 구매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도 제품 생산 단계부터 우리 제품이 어떻게 처분될지 고려해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아예 기업이 스스로 중고거래의 장을 먼저 나서서 마련해 줄 수도 있다. 번개장터와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 회사들은 단지 MZ세대를 넘어 어떻게 폭넓은 세대로 시장을 더 확대할 것인지가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또한 과거 김치 냉장고가 기존의 냉장고 시장에서 하나의 독립적 시장을 형성한 것처럼, 어떻게 기존의 중고거래 마켓에서 새롭고 차별화된 리더가 될 것인지에 대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