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망시 기업 대표 1년 이상 징역형…법인은 50억 이하 벌금

중대재해법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손해액 5배까지…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예외 규정 많아 실효성 의문…노사 모두 반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사진=뉴스1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중대재해법)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노동자 1명 이상이 숨지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의 대표이사도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중대재해법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경영 책임자, 법인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한다.

경영 책임자 10억 이하, 법인 50억 이하 벌금형

중대재해법상 중대 재해는 '중대 산업재해'와 '중대 시민재해'로 나뉘뉜다. 중대 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법에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때 '경영 책임자'는 대표이사와 같이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안전 담당 이사 등을 가리킨다. 또 중대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나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최대 50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될 수 있다.

아울러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으로, 고의나 중대 과실로 중대 재해를 낸 경우 사업주와 법인 등은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크레인에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대 시민재해는 공중 이용시설과 공중 교통수단 등의 관리 부실로 발생한 것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인 재해와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인 재해 등을 의미한다. 중대 시민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가 안전 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고, 중대 시민재해에도 양벌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된다.

5인·50인 미만 사업장 등 예외…실효성 '의문'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을 중대 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예외가 많이 만들어져 실효성에는 의문이 생긴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5인 미만 사업장은 123만 곳으로 종사자 수도 333만명에 달한다. 이들 모두 중대재해법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얘기다. 중대재해법은 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이후 3년 동안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재 예방 인프라를 갖추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지만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도 당분간 산업현장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도 소상공인 사업장, 교육시설, 바닥 면적 합계가 1000㎡(약 302평) 이상인 다중이용 업소 등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대 재해에 대한 처벌 대상인 경영 책임자에 안전 담당 이사를 포함한 것도 허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 재해를 낸 기업의 대표이사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줬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제외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사 모두 반발…노총 "현실 무시한 법" vs 경총 "기업들 공포"

이와 관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중대재해법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차별법'으로 규정하고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 사업장을 쪼갠 '가짜 50인 미만,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라면서 "대다수의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작업 사업장의 현실을 무시한 법 제정"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사고 발생 시 기계적으로 중한 형벌을 부여하는 법률 제정에 대해 기업들은 공포와 두려움을 떨칠 수 없다"면서 "경영 책임자와 원청에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를 부과한다"고 우려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