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최대주적은 미국"…핵역량 과시하며 바이든에 양보 압박(종합)

대선 뒤 첫 대미 메시지…'강대강·선대선' 원칙으로 미국에 공 넘겨
김정은, 도발 언사는 자제하며 수위 조절…일단은 지켜볼 듯
북한이 9일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능력을 계속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새 미국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압박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리며 기선 제압에 나서 제재 완화 등 원하는 조치를 끌어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또 앞으로 북미관계는 '강대강·선대선' 원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비례하는 대응을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에 공을 넘긴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지난 사흘간(5∼7일) 진행된 김 위원장의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 내용에 대해 "새로운 조미(북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대북)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보고에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대외정치 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했다.

작년 11월 초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 이후 북한에서 대미 메시지가 나온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오는 20일 취임하는 바이든 당선인에게 '적대정책 철회가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적대정책 철회는 북한이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마지막 북미 실무협상 결렬 이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꾸준히 요구해온 것이다.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해온 만큼 미국도 북한에 체제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번 당대회 보고는 북한의 이런 요구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이 먼저 만족할만한 상응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대화 제의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이 미국을 '최대의 주적'이자 '굴복시킬 대상'으로 규정하며 다양한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힌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2019년 말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무기'를 예고했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언급했다.

소형·경량화된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계속하기로 했으며, 1만5천km 사정권의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여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거리 1만5천㎞이면 미 본토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다.

핵잠수함과 여기에 탑재할 수중발사핵전략무기 개발도 미국의 핵 공격에 핵으로 반격할 수 있는 2차 공격능력 확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핵무기 개발에는 시험발사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행보에 따라 북한이 고강도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대회 보고에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북한이 미국의 협상 목표 기대를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 능력 축소'로 낮추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비핵화 의지는 전혀 안보이고 오히려 계속 핵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향후 북미대화가 재개되면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북한의 핵 능력을 축소하는 핵 군축 회담으로 가자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해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책임있는 핵보유국'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먼저 강경하게 나오지도 않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드러날 때까지는 동향을 살피면서 당분간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같은 고강도 군사행동은 자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미국이 내부 문제로 바로 북한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고, 대북 정책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 미국이 먼저 문을 닫지 않는 한 당분간 인내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아직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하지도 않았는데 북한이 먼저 양보하거나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을테고 그렇다고 대화에 완전히 문을 닫을 수도 없어 현 시점에서 북한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계속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대외사업 부문에서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관계를 가일층 확대발전시키고 (중략) 국가의 대외적 환경을 더욱 유리하게 전변시켜나갈 것"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