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마약·성범죄에 'AI 수사관' 투입한다

대검 과학수사부, 서강대와 협력
전통검사로 검출 안되는 마약류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분석·적발

경찰은 성폭력 피해자 조사 때
AI가 수사관에 추가질문 추천
전국 경찰서 59곳에 시범 적용
#.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건강식품에 불법으로 섞은 뒤 건강보조제로 판매하던 A씨. 정부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발기부전 치료제가 아닌 발기부전 치료제 유사물질을 섞어 판매해 재미를 봤다. A씨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약효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물질 성분의 화학구조만 변형시켜 정부 단속을 피했다.

#. 태국어로 ‘미친 약’을 뜻하는 ‘야바’. 메트암페타민(필로폰)에 카페인 등을 섞어 만든 신종 향정신의약품이다. 일반적인 필로폰과 달리 노란색이나 붉은색을 띠고 있다. 정제, 캡슐 형태로 포장되기 때문에 의약품으로 위장하기 쉽다. 2019년 한국에서 외국인 마약사범의 44.9%는 야바를 밀수입한 태국인이었다.갈수록 교묘해지는 불법 유사 의약품과 신종 마약류를 인공지능(AI)이 검거할 전망이다. 11일 검찰 및 학계에 따르면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는 지난달 ‘AI 기반 규제물질 분석기술 개발’ 사업을 마치고 조만간 실무에 도입하기로 했다. 연구는 서강대 산학협력단이 수행했다. 신종 마약 검출 수사기법에 AI가 활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종 마약 데이터 AI 손안에”

연구의 핵심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그동안 추적이 어려웠던 신종 마약류를 적발하는 것이다. 최근 마약조직은 검찰과 경찰의 단속에 걸리지 않는 신종 마약류를 개발하고 있다. ‘NPS(new psychoactive substances)’로 불리는 신종 마약들은 기존에 알려진 마약에서 화학구조만 부분적으로 바꿔 만든 합성화합물이다. 약효는 비슷하지만 기존 검사기법으로는 검출이 안 된다. 마약 시장에 유통된 후 1~2년 새 또 다른 새로운 유사 물질에 의해 대체돼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렵다.연구팀은 대검찰청에서 보유하고 있는 마약 물질 184개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질량을 모두 분석했다. 이후 2만6170개의 데이터베이스로 세분화한 뒤 신종 마약 물질들과 비교해 유사도를 판별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새로 개발된 분석법을 적용하면 AI가 신종 마약류를 어렵지 않게 적발할 수 있다”며 “분석법에 획기적인 효율 향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증거물 확보도 빨라질 전망이다. 기존의 분석법은 마약사범의 혈액·소변시료와 마약 성분 간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약 성분이 생체 내에서 분해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연구팀은 “새로 개발된 분석법을 적용하면 대사체물에 대한 분석도 가능해 마약사범의 단속 및 증거물 확보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식품범죄 등 응용 분야도 넓어

검찰이 확보한 AI 마약 검출 기법은 응용 분야도 넓다. 연구팀은 “마약류 외에도 건강식품으로 둔갑시켜 파는 불법 유사 의약품이나 특허권을 침해하는 유사 물질 검출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살 빼기 건강식품 내 유사 이뇨제, 설사제 성분들을 검출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들어 AI를 활용한 범죄정보 분석 및 수사기법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은 지난달 성폭력 피해자 진술 조사에 ‘AI 음성인식 성폭력 피해조서 작성 시스템’을 도입했다. 전국 경찰서 59곳에서 시범 적용한 뒤 2022년까지 전국 255개 경찰서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AI 피해조서는 피해자 진술에 맞춰 수사관이 물을 만한 추천 질문 목록과 관련 대법원 판례 등을 연관시키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성범죄 피해자가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진술했다면 ‘어렴풋’이라는 단어를 시스템이 인식한 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약물 등을 주입했을 가능성을 묻는 질문 리스트가 수사관에게 제공된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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