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비용은 손해 아니다"…중대재해법 취지복원 요구 높아져

법 제정하자마자 광주·전남 산업현장서 노동자 사망 잇달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에도 광주와 전남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자 법 제정 취지 복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12일 이철갑 조선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산업재해 예방이나 안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두고 이윤이 줄어든다거나 손해라고 인식하면 안 된다"며 "사업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전 비용을 기꺼이 감내하고 지불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장에 있다 보면 반복적으로 근로자들이 다쳐서 병원을 찾는 업체들이 있다"며 "사업주 입장에서 안전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일은 5인 미만이나 5인 이상의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며 "처벌 제외 조항을 이용해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형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공정을 중단하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산재를 예방하는 비용보다 사고 시 발생하는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사업체는 철저하게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예기간 동안 실제 사고가 줄어들었는지 확인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기업과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법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일로부터 1년 뒤인 내년부터 시행한다. 법은 산재나 사고로 노동자가 숨지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받도록 했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경제계 등의 반발로 인해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과 10인 이하 소상공인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50인 미만 사업장도 공포 3년 뒤부터 법안 적용을 받는다.
전날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진 광주 광산구 지죽동 플라스틱 재생업체는 상시근로자 고용 규모가 4인이라서 중대재해법이 시행 중이라 해도 적용 제외 대상이다.

그보다 하루 전인 10일 협력업체 소속 30대 기계 정비원이 숨진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유연탄 저장 업체는 시행 이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이번 사고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각각 사고의 책임자 모두 기존처럼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을 것으로 보인다.

광산구 지죽동 플라스틱 재생업체 사고의 피해자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기계로 잘게 부수는 작업을 혼자 하다가 몸이 빨려 들어가면서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

기계를 즉시 멈춰 줄 동료가 곁에 있었다면 최악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여수산단 유연탄 저장 업체 사고 현장에는 동료가 있었지만, 설비 멈춤 장치가 1개 층 위에 자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해자는 기계 점검 작업 도중 갑자기 설비가 가동하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2년 5개월 전인 2018년 8월에도 4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 운송대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민주노총 광주본부 등 노동계는 이날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정 취지와 동떨어진 지금의 중대재해법으로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 등은 "누더기 중대재해법을 통과시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 정부,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노동청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