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칼럼] '코킷리스트'라는 시장

권영설 경영전문위원
‘코킷리스트’라는 말이 유행이다. 생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의 목록을 뜻하는 ‘버킷리스트’를 살짝 뒤튼 신조어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라는 뜻으로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퍼 나르고 있다. 해외 여행, 골프패키지 등 멀리 떠나는 것부터 삼겹살 잔치, 치맥 파티 그리고 노래방에서 애창곡 부르기까지 다양하다.

애들 장난 정도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코킷리스트야말로 잠재된 수요를 찾아낼 수 있는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 사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야말로 마케터들의 꿈이다. 다시 일상이 예전처럼 돌아온다면 하고 싶은 것이란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억눌려 있는, 그래서 열리기만 하면 폭발할 수 있는 ‘니즈’인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사업 기회가 열린다.이런 기회가 만들어진 배경은 당연히 코로나다. 코로나가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면서 기존의 일상을 파괴한 탓이다. 식당에 못 가니 배달 주문을 하고, 마트가 꺼려지니 온라인으로 몰린다. 자연스런 변화다.

거리두기에 억눌린 수요와 욕망

고객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은 사실 이베이 같은 온라인 경매업의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다. 온라인 경매업은 낙찰 수수료만 받아서는 큰돈을 벌지 못한다. 이 업종의 실제 고객은 경매가를 좇아가다 아슬아슬하게 낙찰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온라인경매회사는 이 사람들이 ‘얼마에’ 사고 싶어 하는지, 즉 지불의사금액(WTP: willingness to pay)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거대한 수요를 잡아낼 수 있다.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코킷리스트는 비즈니스 기회가 넘치는 시장이다. 당장 귀사의 기존 고객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이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라. 그렇게 ‘고객의 마음’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을 통해 어쩌면 고객들 ‘스스로도 잘 모르는 니즈’를 찾아내는 행운도 생긴다.또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 정책이 시도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고객의 수요를 흔들어버리는 즉 시장을 진작(振作)하는 경우다. 수요가 감춰져 있기 때문에 자극해 깨우는 것이다. 판소리 밴드 ‘이날치’의 소셜미디어 활동상을 보라. 관광공사가 세계인을 상대로 한국을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여행가고 싶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홍보 캠페인인데, 누적 조회수가 5억 회를 넘었다. 수요를 건드렸으니 때가 맞을 때 폭발을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 장벽 뛰어넘는 혁신 기회

지금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엄격하게 시행될 때는 비즈니스가 정지되고 돈도 묶일 수밖에 없다. 사업을 돌리고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코로나가 끝나면 오히려 ‘팔 것’이 없어 낭패를 보는 업체와 사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사업을 돌리기 위해서는 미래의 시간을 당겨 팔아야 한다. 몇 가지 조건을 걸어 여행상품, 항공권, 호텔숙박권을 미리 팔 수 있다. 가족여행권, 단체식사권, 부부스파권, PT 1년 이용권, 식당 회원권 등 팔 수 있는 건 많다. 미리 파는 만큼 충분히 염가로 제공할 수 있다. 도산할 회사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를 대비하는 보험상품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이미 일부 여행사는 코킷리스트에 기반한 사업을 시작했다.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는 코로나 이후의 일곱 가지 뉴노멀을 얘기하면서 그중 하나로 ‘산업구조, 소비자 행동, 시장 위치, 업종별 매력도 등의 변화’를 꼽았다. 시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만 억눌려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코킷리스트라는 사람들의 ‘희망 리스트’에 코로나 이후 시장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