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감염되면 폐 세포 텔로미어 대폭 준다

'허파꽈리 Ⅱ형 폐포' 집중 공격→폐섬유증 유발
스페인 국립 암 센터 연구진, 저널 '에이징'에 논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가 폐에 감염하면 폐 세포의 텔로미어(telomere)가 급속히 짧아져 조직 재생이 어려워지고 폐섬유증 같은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국립 암 센터(CNIO)의 마리아 블라스코 박사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논문은 11일(현지 시각) 저널 '에이징'(Aging)에 실렸다.

이를 토대로 조직 재생 치료법이 개발되면, 코로나19 회복 환자의 폐섬유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을 거로 기대된다.

블라스코 박사는 CNIO의 '텔로미어 앤드 텔로머레이스 그룹'(Telomeres and Telomerase Group)의 책임자이며, 지난 수십 년간 텔로미어의 조직 재생 메커니즘을 연구해 왔다. 텔로미어는 염색체의 양 말단에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해 이어진 구조로, 염색체 말단의 손상과 염색체 근접 영역 간의 융합을 막는다.

척추동물의 텔로미어 염기서열은 'TTAGGG'인데 인간의 경우 이 염기서열이 약 2천500번 반복된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해 DNA 복제가 이뤄질 때마다 계속 짧아진다. 그러다가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텔로미어가 염색체 보호 기능을 상실하고 세포도 분열을 중단한다.

이렇게 세포가 분열을 멈춰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노화가 진행된다.

짧아진 텔로미어가 노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수년간 학계에선 텔로미어의 성장을 촉진하는 텔로머레이스 효소가 주목받았다.

이 효소의 활성화를 자극하면 노화나 텔로미어 손상 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게 동물실험에서 잇따라 입증됐다.

폐섬유증은 폐 조직에 상처가 생겨 뻣뻣하게 굳는 병으로 진행성 호흡 곤란을 유발한다.

블라스코 박사팀은 이전의 연구에서 폐 조직의 재생에 관여하는 '허파꽈리 Ⅱ형 폐 세포'(alveolar type II pneumocytes)의 텔로미어 손상이 폐섬유증의 주요 원인이라는 걸 밝혀냈다.

그런데 폐에 침입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마치 조준이라도 한 듯이 공격하는 지점이 바로 이 유형의 폐 세포다.

블라스코 박사는 "신종 코로나가 허파꽈리 Ⅱ형 폐 세포에 감염해 텔로미어를 손상하면 폐섬유증을 유발할 수 있다"라면서 "이는 폐 세포의 텔로미어가 짧아져 조직 재생 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마드리드 IFEMA 전시 구역 내에 세워진 임시병원 측과 협력해 코로나19 입원 환자 89명의 텔로미어를 분석했다.

다시 거세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실험 환자와 검체 확보에 어려움이 컸다.

보통 텔로미어는 나이가 들수록 짧아진다.

하지만 병증이 심각한 코로나19 환자의 텔로미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연령대의 경증 환자보다 훨씬 짧았다.

이는 짧은 텔로미어와 같은 노화의 특징이, 코로나19 병세의 위중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그런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텔로머레이스도 생성하지 못하는 생쥐 모델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생쥐는 짧아진 텔로미어를 복원할 수 없으며 폐 조직의 재생도 불가능하다.

블라스코 박사팀의 가설이 맞는다면 이런 생쥐는 정상 생쥐보다 더 심각한 폐섬유증이 생겨야 한다.

블라스코 박사는 "몇몇 선행 연구에서 텔로머레이스 활성화의 치료 효과가 입증한 걸 생각하면, 코로나19 회복 환자에게 남아 있는 폐섬유증 등에도 이런 접근이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미 텔로머레이스를 활성화하는 세포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 치료제가 임상 시험을 거쳐 실제로 쓸 수 있게 되려면 최소한 1년 반은 걸릴 거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