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8000만원서 1년 만에 100억으로…코로나로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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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방역 '핸드레일 살균기' 개발고생은 빠르게 보상받는 듯했다. 제품 출시 3개월 만에 롯데호텔에서 첫 주문이 들어왔다. 이 제품이 당시 호텔에 묵고 있던 중동 기업인 눈에 들면서 수출까지 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클리어윈코리아
호텔 설치 3개월만에 '날벼락'
"법적 설치 근거없다" 철거명령
폐업 기로서 코로나 사태 본격화
성능 입소문 타며 53개국 수출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롯데호텔에 설치된 제품은 3개월을 못 버텼다. 수출까지 했지만 국내엔 법적 설치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이 떨어져서다. 빚이 불어나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매달려 설치 기준 제정을 이끌어내고는 제품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에스컬레이터 필수 방역 장치로 자리매김한 핸드레일 살균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김경연 클리어윈코리아 부사장의 이야기다.그의 본업은 인테리어였다. 골프장 인테리어 시공을 주로 했다. 살균기에 눈을 뜬 데는 딸의 사고가 계기가 됐다. 위생에 민감한 초등학생 딸이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있다가 넘어져 다치면서다. 구동 방식, 크기, 디자인 등을 수없이 고치고 다듬었다. 개발 시작 2년여 후 첫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금형만 10개를 버렸다.
공들여 완성한 제품은 반응이 괜찮았다. 자외선(UV-C)으로 세균과 바이러스를 죽이는 방식이 주목받았다.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이 움직이는 힘으로 제품 발전기가 구동돼 별도 전원이 필요없는 것도 매력으로 꼽혔다.
롯데호텔에 처음으로 제품을 설치하고 3개월 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정기 검사를 나온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법적 설치 근거가 없다’며 철거 명령을 내렸다. 자금이 동나고 판로는 막혔다. 졸지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안전당국을 설득해 한국승강기안전공단과 함께 설치 기준을 마련해내고는 사촌 형(김유철 현 클리어윈코리아 사장)에게 SOS를 쳤다. 김유철 사장이 투자금을 대고 법인(클리어윈코리아)을 신설하는 등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힘에 부쳤다. 결국 김 부사장은 2020년을 한 달 앞두고 “형님, 그만합시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김 사장은 동생을 다독이며 딸 대학 입학 선물로 준비해둔 오피스텔을 새 사무실로 내놨다. “딱 1년만 버텨보자”며 손을 잡았다.오피스텔을 새 전진기지로 삼은 지 열흘 만인 지난해 1월 서울 여의도의 IFC빌딩에서 12개를 설치하겠다고 연락해 왔다. 설 연휴가 끝난 뒤에는 “84개를 설치해달라”며 수량을 정정했다.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본격 확산하기 시작한 영향이었다.
핸드레일 살균기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높아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죽이는 것으로 인증받은 덕분이다. 이 제품의 275㎚(1㎚=10억분의 1m) 파장 자외선에 2.7초만 노출돼도 대장균과 황색포도상구균, 폐렴균 등이 99.99% 죽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성능이 입소문을 타면서 살균기는 지난해 미국 영국 중국 등 세계 53개 국가에 수출됐다. 2019년 8000만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00억원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 부사장은 신용불량자 꼬리표를 떼어냈다.세계 각국 바이어의 의뢰를 받아 개발 중인 휴대용 살균기 클리어스캔과 인공지능(AI) 기능이 적용된 클리어봇 등 신제품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안양=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