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전셋값'을 어찌할까요

흔히 '전셋값'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전세를 빌리는 데 드는 돈을
나타내는 말이어야 한다. 그것은 '전세금' 또는 '전셋돈'이라고 한다.
1999년판 에는 전셋값 대신 '전세금', '전셋돈'이 올라있었다.
사진=뉴스1
연초부터 쌀값, 기름값 등 생활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5억6702만원으로, 새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지난해 7월 말에 비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전셋값 상승’은 지난 한 해 수시로 입에 오르내리며 서민 가계에 주름을 깊이 지게 했다.

‘값’은 원래 돌려받지 못하는 돈

그런데 ‘전셋값’이란 말은 잘 들여다보면 좀 어색한 단어다. 보통 ‘값’은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말한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에 치르는 돈으로, 돌려받지 못한다. 그게 우리가 아는 ‘값’의 일반적 의미 용법이다. 흔히 말하는 집값이니, 배춧값이니, 옷값, 음식값 같은 게 다 그렇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은 좀 더 구체적이다. ‘값’이란 사고파는 물건에 일정하게 매겨진 액수 또는 물건을 사고팔 때 주고받는 돈을 말한다. 또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가격, 대금, 비용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기름값/물값/물건값’ 같은 게 그런 예다.‘전셋값’은 어떨까? 우선 ‘전세(傳貰)’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전세’란 남의 집이나 방을 빌려쓸 때 주인에게 일정한 돈을 맡겼다가 내놓을 때 그 돈을 다시 찾아가는 제도 또는 그 세, 즉 사용료를 말한다. 전셋돈, 전세금, 전셋집, 전세방, 전세권, 전세살이 같은 복합어를 만든다. ‘전세’라는 말은 1957년 한글학회에서 완간한 <조선말 큰사전>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세와 어울려 쓰는 말은 ‘전셋집’ 정도만 있었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만 해도 ‘전셋값’이란 말은 없었다. 지금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에는 ‘전셋값’이 올라 있다. 그 이후 새로이 표제어로 올렸다는 뜻이다.

지금은 누구나 ‘전셋값’을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값’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전셋값’은 돌려받는 돈인데도 ‘값’이 붙어서 말이 굳어졌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같은 구성으로 된 ‘월세’는 ‘월셋값’이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더 그렇다. 월세는 “월세 50만 원” 식으로 그냥 월세라고 한다. 월세 자체가 집이나 방을 다달이 빌려 쓰는 데 내는 돈을 뜻하니, 이게 마땅한 표현이다. 거기에 ‘-값’을 붙이는 것은 어색하다.

전세금 또는 전셋돈이 원래 쓰던 말

흔히 ‘전셋값’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전세를 빌리는 데 드는 돈을 나타내는 말이어야 한다. 그것은 ‘전세금’ 또는 ‘전셋돈’이라고 한다. 1999년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셋값 대신 ‘전세금’, ‘전셋돈’이 올라있었다. 이게 원래 쓰던 용어다. 인터넷판에 오른 ‘전셋값’은 ‘전세를 얻을 때 주인에게 맡기는 돈의 액수’로, ‘전세가(傳貰價)’와 같은 말로 풀이했다. 전세금(전셋돈)의 풀이에 ‘~의 액수’가 덧붙었다. ‘가격’이란 물건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돈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그러니 굳이 해석하자면 전셋값은 전세금, 즉 그 돈의 ‘가치’를 나타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별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자의적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그래서 한글학자인 리의도 선생은 오래전에 이 전셋값을 전세금 또는 전셋돈으로 써야 마땅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올바른 우리말 사용법>, 2005). 하지만 수십 년을 써오면서 ‘전셋값’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이를 되돌리기는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말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언중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단어의 생성원리는 알고 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을 건강하게 지키고 창조적으로 응용도 할 수 있다.